[영화] 소공녀 :: 미소가 보여준 또다른 삶의 선택지

사람들에게 있어 집은 쉼을 누리게 해주는 삶의 안식처와 같지만 이러한 공간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과 대가가 때때로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한 이유로 예상 외의 결단을 내림으로써 색다른 이야기를 마주하는 인물들이 존재하는데 영화 <소공녀> 속의 미소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집을 소유하지 않는 삶을 통해 자신만의 기준으로 생활을 지탱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존재의 등장은 놀라우면서도 흥미를 자아냈으나 환상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기에 마냥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영화 <소공녀>는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켜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그려낸 작품이다.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한 모금, 사랑하는 남자친구 한솔만 있다면 세상 어디에서든 버텨내는 것이 가능한 미소. 프로 가사도우미로 3년차 경력을 보유했으나 애석하게도, 자신이 벌어들이는 일당을 제외한 모든 것들의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고민 끝에 집을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다소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여지긴 했지만 아무런 생각 없이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대학교 시절, 함께 활동했던 밴드 멤버들을 찾아가 신세를 지는 동안 돈을 모아 새로운 집을 구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미소에게 다가 온 예기치 못한 인생은, 영화 밖 청춘들의 고단한 현실을 대변하며 흥미로운 시간을 전했다.


그저 단지, 집이 사라진 것일 뿐이고 여행 중이라고 여기면 그만이었다. 오랜만에 연락을 취하게 된 건 미안했지만 얼굴을 마주하니 일말의 반가움이 더 앞섰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녀가 오래도록 머물 집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게 됨으로써 변할 수 밖에 없던 이들 속에서 미소만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렇게 차례대로 멤버들이 머무는 공간을 전전함으로써 맞닥뜨리게 된 에피소드는, 집의 의미를 다양한 각도로 보여주며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다. 몸이 편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편안한 것은 아니었고, 따뜻한 웃음 뒤에 도사린 음모의 실체는 경악을 불러 일으켰으며, 집을 갖기 위해 그곳에 살며 20년을 갚아나가야 하는 모습은 씁쓸함을 더하기까지 했다. 


멤버들이 변했고, 미소가 변하지 않음으로 인해 생겨난 갈등은 좁혀나갈 수 없는 가치관으로 그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볼 수 없었다. 단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지 않았던 것이 이유였다. 



사람의 생김새 못지 않게 다양한 집의 이면을 통해 확실성과 불확실성 사이를 넘나드는 굴곡의 변주가 세상살이를 그대로 드러내며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프로 가사도우미답게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치우고 맛있는 음식을 요리할 줄 아는, 프로의 면모를 지닌 미소가 오히려 그러한 공간을 가질 수 없는 점도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사는데도, 집이 없다는 이유로 폭력에 노출돼 있어야만 했던 순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와중에 사랑하는 남자친구는 꿈 대신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녀와의 행복을 위해 미소가 내던진 삶 속으로 뛰어든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안정이라는 울타리가 파생시킨 덫은, 그렇게 서서히 미소를 옥죄어 오고 있었다. 



과연, 미소의 집은 어디쯤에 있는 걸까? 영화는 희망으로 가득한 해피엔딩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여전히 본인의 삶을 취향에 따라 올곧게 누리는 주인공을 통해 짠내나는 고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국어 제목보다 'Microhabitat' 라는 영어 제목이 더 와닿기도 했다. 소공녀는 미소서식환경이라 불리는 단어의 의미를 반어법적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마이크로해비타트가 입에 더 쫙 달라붙어 떠날 줄을 몰랐다. 



아주 작은 집. 오로지 미소를 위한 집의 조건은 그리 까다롭지 않은데, 그녀는 언제까지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약을 챙겨먹지 못해 백발이 되어가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던 장면 속에서 나는, 여전히 주관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미소를 보았고 그래서 행복했다. 부서지는 슬픔이 차곡차곡 녹아든 희열 속에서 아주 조금 눈물이 났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가 계속해서 취향을 갖고 살아가면 좋겠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거침없이 성취해 나가는 미소가 부러웠다. 한결같이 다정했던 미소의 모습은 애달팠지만, 아름다웠다. 그래서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이기적인 소망이라고 할지라도. 


이솜 배우가 보여준 미소의 모든 찰나가 눈부셨다. 좋아하는 위스키를 마시던 그녀만의 시간은 보는 것만으로 황홀했다. 모두와 다른, 이러한 선택과 인생 또한 있음을 알게 해준 그녀를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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