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빈센트 리버 :: 혐오의 시대를 관통하는 비극 (남기애, 이주승)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4관에서 공연 중인 연극 <빈센트 리버>를 관람했다. 작년에 초연되었으나 못 보고 넘어가서 아쉬웠는데, 올해 빠른 재연으로 돌아옴에 따라 드디어 만나볼 수 있게 돼 기뻤다.  

 

이 작품은 동성애 혐오로 인하여 발생한 범죄를 소재로 쓰여진 것이 특징이다. 그리하여 갑작스레 아들 빈센트를 잃게 된 아니타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로 현장에 있었던 데이비가 만나게 되면서 시작되는 스토리 전개가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선사하며 무대 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에 쏟아지던 그날의 진실은 조각난 퍼즐 조각을 차례대로 맞추어 나가며 완성해야 하는 것과 다름 없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결말을 맞닥뜨리기까지 눈 앞에서 벌어지는 모든 순간을 지켜보는 내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살인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죽은 빈센트와 아니타에게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도망치듯 떠나 새롭게 자리잡은 곳에서 집 주변을 맴돌던 17살 소년 데이비와 대면함으로써 비롯된 이야기의 실체가 심금을 울렸다. 

 

[CAST]

아니타 : 남기애

데이비 : 이주승

 

연극 <빈센트 리버>는 2인극으로써 아니타와 데이비를 맡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만으로도 무대가 가득 채워져 긴장감을 놓지 못한 채로 몰입해서 보는 재미가 남달랐다. 빈센트가 살아 생전에 매우 가까운 관계에 놓여 있었다는 공통점을 보유함에 따라 죽은 이와 함께 했던 추억을 공유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여겨 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아니타와 데이비의 과거를 깊숙이 들여다 보게 해줌으로써 녹록지 않았던 그들의 삶을 마주하게 해주던 한때도 인상적이었다. 이로써 지금껏 알지 못했던 빈센트의 또다른 모습을 확인하며 서로를 이해해 나가게 된 두 사람의 변화가 애틋함을 더하고도 남았다. 

 

다만, 내용상 맨 정신으로는 하기 힘든 얘기들이 많았던지라 공연 중 담배(금연초)를 피거나 술을 마시거나 약을 먹는 장면 등이 여럿 포함되어 있었으니 예매에 앞서 이 점은 참고하기를 바란다. 

 

내가 본 연극 <빈센트 리버>의 아니타 역은 남기애, 데이비 역은 이주승이 맡아 기대 이상의 호연을 마주하도록 도왔다. 특히, 어마어마한 대사량을 거침없이 소화해내며 공연에 빠져들게 만든 두 배우의 활약에 감탄이 절로 나왔으므로 커튼콜이 진행될 때 기립박수로 화답하게 되었음을 밝힌다.

 

 

기애 아니타는 빨간 곱슬머리, 꽃무늬 원피스, 보라색 하이힐로 구성된 캐릭터 스타일링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여기에 더해 거친 말투를 중심으로 접할 수 있었던 신경질적인 면모와 은연 중에 행동으로 표출되던 묘한 떨림이 언제 어디서든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임을 알려줌과 동시에 아들을 잃은 슬픔이 동반된 불안정한 상태 그 자체임을 깨닫게 해서 마음이 아팠다.

 

상처난 얼굴로 검은 정장을 갖춰 입고 아니타 앞에 나타난 주승 데이비는 등장할 때부터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인물의 분위기를 가감없이 뽐냈다. 무덤덤하고도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가려 애쓰는 모습 속에서 감정을 쉬이 드러내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엿보여 호기심이 증폭될 때가 많았다. 그러다 결국에는 마음을 열고 자신이 아는 모든 걸 털어놓으며 아니타의 선택을 기다리던 찰나가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이주승 배우는 연극 <킬롤로지>, <아들 르피스(Le Fils)>에 이어 또 한 번 10대 소년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매번 공연에 따라 요구되는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를 완벽하게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본인만의 연기내공을 발산하며 탄성을 내뱉게 도와서 만족스러웠다. 연극 <빈센트 리버> 초연으로 그치지 않고 재연에도 다시금 이름을 올려줘서 다행스러웠다. 덕분에 주승 데이비를 볼 수 있었으니까. 

 

공연 속 기애 아니타와 주승 데이비의 호흡과 케미도 환상적이었다. 약 120분의 러닝타임 중 암전이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쉴새 없이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제 역할을 다 하던 두 배우가 대단해 보였음은 물론이다. 

 

 

반면,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던 데이비의 독백씬이 펼쳐질 때의 동선은 아쉬움을 남겼다. 기찻길을 따라 내려간다는 대사와 더불어 데이비가 무대에서 객석 앞쪽으로 자리를 옮겨 정면을 보며 말을 할 때까진 괜찮았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D열 뒷편에 위치한 가운데 통로로 걸어 들어가 무대를 등진 채 아니타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대사를 해나가니, 앞열에 앉은 관객들은 데이비의 뒤통수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하는 상황이 생겨버리고야 말았다. 그러다 몸을 돌려 아니타를 마주보며 얘기를 쏟아내는 장면에선 반대로 뒷열에 자리를 잡은 관객들이 데이비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돼 혼란스러운 때가 없지 않았다. 

 

어떤 좌석에 앉더라도 시야에 방해가 생기는 연출은 단 한 번의 관람이 전부인 관객에게 있어 불호 요소를 심어주는 포인트로 작용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나 또한 자첫자막 예정이었던지라 조금 당황스럽긴 했는데,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 고개를 앞뒤로 움직여가며 데이비의 표정을 파악하고자 고군분투한 결실을 맺게 돼 그나마 흡족했다. 이날 앉았던 자리가 D열이었어서 고개를 돌리는 일이 그나마 수월했고, 데이비가 아니타를 향해 서서 감춰두었던 말을 내뱉던 위치가 좌석과 매우 가까워서 귓가에 때려박히는 사건의 내막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허나 데이비의 독백을 눈 앞에서 포착할 수 없었던 점은 명백히 불호였다. 연출의 의도는 납득이 가지만, 관객들을 위한 결정은 아니었다고 본다.  

 

어쨌거나 사건과 관련된 비밀을 털어놓던 데이비의 독백은 단연 연극 <빈센트 리버>의 백미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디어 표면적인 사건 아래에 숨겨져 있던 진상을 파악한 아니타의 눈물 범벅이 된 얼굴과 사실을 알고 난 뒤에 데이비를 대하던 태도 역시도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았다.

 

이날 만난 연극 <빈센트 리버>는 혐오의 시대를 관통하는 비극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돌아보게 만들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 공연이었다. 동성애 혐오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을 뿐, 각기 다른 혐오로 말미암아 상처와 고통을 품에 안고 삶을 지탱해 나가야 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는 일련의 메시지는 어디에서나 통용된다고 봐도 무방했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종류의 혐오를 향해 일침을 가한 이야기의 무게를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사건의 진실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 안에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며 애도하던 아니타와 데이비, 둘만의 의식이 꽤 오래도록 머리 속에 기억될 것임을 언급하며 오늘의 리뷰를 마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