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부즈 제주 :: 은밀한 입구와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인상적인 칵테일 바
맛있는 고기로 배부른 저녁식사를 마쳤지만, 이대로 숙소에 돌아가긴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들어 술 한 잔을 즐기고자 더 부즈 제주로 향했다. 이곳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홍보도 안 하는 비밀스러운 가게를 뜻하는 스피크이지 바(Speakeasy bar)로 통하는 곳이었다.
참고로, 본점은 한남동에 위치한 더 부즈 한남이고, 우리가 찾아간 더 부즈 제주(THe Booze Jeju)는 2호점이라고 한다. 서울에 더 부즈 청담도 생겼던데, 여기는 아마도 3호점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더 부즈 제주는 목적지에 도착해도 간판이나 입구를 만나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인 만큼, 비밀스러움을 가득 뿜어내며 호기심을 자아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새빨간 공중전화박스가 전부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발걸음을 돌려서는 안 된다. 여기에 답이 있으므로.
그렇다. 공중전화박스를 열고 들어가 벽을 밀면 비로소 더 부즈 제주의 진면목이 눈 앞에 펼쳐진다. 친구가 내가 좋아할 것 같다며 미리 알아둔 장소라서 더더욱 설렜다. 나 역시도 여기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어왔으나 미처 가볼 생각은 못 했기에, 친구의 배려와 센스에 깊이 감동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이유로, 빨간 공중전화박스를 발견하자마자 절로 신이 났다. 해리포터, 셜록홈즈 등이 머리 속에 떠오를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킹스크로스 역 9와 4분의 3 승강장도 문득 생각이 났다.
빨간 공중전화박스 안에 자리잡은 전화기의 비주얼도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입장하기 전에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흥분해서 그런지 몰라도 사진이 좀 흔들렸다.
그래도 이렇게 남길 수 있을 정도는 돼서 다행이다 싶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멋지게 꾸며진 통로가 다시금 시선을 사로잡는다. 앤티크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라서 잠시 멈춰 선 상태로 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있었는데, 그 사이 직원 분이 안내를 위해 모습을 드러내신 걸 확인한 친구가 재촉하는 바람에 역시나 제대로 찍은 사진은 이게 다였다.
밖은 밤이라서, 가게 내부는 빛을 최소한으로 사용함에 따라 다소 어두운 편에 속함으로써 사진 대부분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해본다.
스피크이지 클래식바 컨셉으로 운영되는 더 부즈 제주는 은은한 조명을 중심으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돼 이로 인한 만족스러움이 더해졌다. 다양한 종류의 술이 가지런히 진열된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매일 밤 8시부터 영업이 시작되는 더 부즈 제주에는 독특한 규칙이 존재한다. 30세 미만 출입금지, 5명 이상의 단체 출입금지, 멤버십 외 예약불가, 사진촬영 시 일행 외 고객 얼굴 노출 금지, SNS 포스팅은 가능하나 더 부즈의 주소 노출 및 사장님 tag 또한 금지된다. 단, 나이 제한의 경우에는 30세 미만이라 하더라도 30세 이상의 동반자가 있다면 출입이 허용된다. 안주용 음식을 가져와도 좋은데 이때의 세팅비는 별도다. 그리고 테이블 차지는 인당 10,000원씩.
다소 까다로워 보이지만 막상 지키기 어려운 내용은 또 아니었으므로, 색다른 컨셉의 칵테일 바를 경험하게 돼 오히려 즐거웠다. 자리는 바석과 테이블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나란히 바석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이날도 역시나 반가웠던, 초록 스탠드의 빛과 함께.
초록 스탠드 외에 입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빨간 공중전화박스 조명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일단 자리에 앉으면 따뜻한 타올과 계절감이 반영된 웰컴 드링크를 가져다 주시는데 이때부터 시작된 더 부즈 제주만의 서비스가 마음에 쏙 들었다. 날이 추운 겨울에 찾아갔기에 타월의 온기가 도움이 많이 되기도 했다.
덧붙여, 처음에 제공되는 웰컴 드링크는 술을 마시기 전에 위장을 보하는 역할을 겸한다고 해서 이 또한 흥미로웠다. 음주에 앞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느낌이 들어 이색적이기도 했다.
기본 안주 겸 먹거리로 만나볼 수 있었던 건 채소와 과자가 유일했는데, 은근히 별미라서 저절로 손이 갔다. 파프리카, 오이, 샐러리로 구성된 채소 한 접시는 길쭉하게 스틱 모양으로 썰어져 나와서 통후추를 곁들인 마요네즈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최고였다. 아삭거리는 상큼함에 고소함이 더해졌음은 물론이고, 색감까지 신경 쓴 티가 나서 만족스러웠다.
과자도 한 가지가 아니라 3종류가 함께 나와서 번갈아 먹는 재미가 있었다. 부드럽고, 짭짤하고, 바삭해서 먹을수록 입에 착착 감겼다. 친구가 왼쪽 아래에 담긴 과자가 취향이라며 이름을 물어봤었는데 아직 기억하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세 가지 스낵 중에서 저것만, 이름을 몰랐다.
위의 주전부리를 제외하면 더 부즈 제주에는 안주가 없다. 근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다 먹고 더 달라고 하면 리필을 해주셔서 괜찮았다. 우리는 그래서 과자를 한 그릇 더 요청해서 주문한 술과 같이 맛있게 즐겼다.
술은, 메뉴판에서 칵테일 종류 위주로 살펴보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종류가 훨씬 많아서 고민하다가 바텐더 분에게 부탁드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취향을 확인한 후, 친구와 나의 칵테일을 차례대로 제조해 주셨는데 메인으로 들어가는 과일 맛의 술과 몇 가지 재료를 빼면 차이점이 거의 없어서 어쩌다 보니 비슷한 맛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왼쪽 뒷편에 위치한 술잔은 친구의 주문으로 만들어진 사과 중심의 칵테일이고, 사진의 한가운데에서 포커스가 맞춰진 채로 반짝이는 비주얼을 뽐내고 있는 술이 바로 나의 것이었다. 이건 배를 중심으로 제조된 칵테일로써 레몬과 탄산수에 배맛을 내는 술인 포아가 들어간다고 설명해 주셨다. 그래서 검색을 좀 해봤더니 그레이 구스(Grey Goose)에서 출시된 보드카 중의 하나로 알려진 그레이 구스 포아(Grey Goose La Poire)가 눈 앞에 나타났다.
이 제품은 프랑스 앙주 배에서 얻은 에센스와 그레이 구스 보드카를 블렌딩해 만든 슈퍼 프리미엄 플레이버 보드카라고 한다. 이 술이 첨가된 건지는 확실치 않지만, 배의 풍미를 낼 때 쓰여지는 재료가 포아인 것은 확실히 알게 돼서 유익했다.
그렇게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완성된 칵테일은 마실수록 배의 맛과 향이 산뜻한 목넘김을 통해 몸 전체에 가득 퍼져 나가면서 알콜의 알싸함을 적당히 느낄 수 있게 해줘서 좋았다. 시원한 배의 풍미가 입을 사로잡았던 칵테일이었다. 배가 숙취해소에도 도움을 준다던데 과일 중에서 배를 고른 게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고 향이 강하지 않은 칵테일로, 과일 중에서도 딸기와 관련된 술을 요청했으나 재료가 없다고 하셔서 계속 얘기를 주고 받다가 배를 골랐는데, 이에 앞서 라즈베리를 권했을 때 주문하지 않은 게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이제서야 라즈베리 칵테일이 궁금해져서 두 잔 마실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참고로, 친구의 칵테일도 맛만 봤는데 사과를 제외하면 내가 마신 술과 큰 차이점은 없어 보였다. 아마도 사과의 맛과 향이 느껴지는 술에 레몬과 탄산수를 넣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바석에 앉았더니 바텐더 분이 말동무가 되어주셔서 이 또한 재밌었다. 제주도에 여행을 왔고, 사진에 관심이 많다고 하자 좋아할 만한 여행지를 여러 곳 추천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맛있는 음식점도 알려주셔서 머리 속에 저장을 해두었다. 다음 제주여행을 위한 정보를 얻은 셈이다.
은밀한 입구를 통과하면 잔잔하게 깔린 어둠 속 빛을 통해 스피크이지 클래식바의 장점이 한껏 드러나는 더 부즈 제주에서의 시간이 행복했다. 친절한 서비스와 분위기도 좋았고, 기본 안주와 칵테일 역시도 기대 이상이라 기분좋게 취할 수 있어 다녀오길 잘했다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 여행 계획을 세우는 여행자들에게 추천하고픈 칵테일 바이기도 하다. 영업 마감 시간은 새벽 3시라고 하니, 이 점을 기억하며 비밀스러운 장소로 향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제주도 여행 중에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술 한 잔을 즐기기를 원한다면, 여기가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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