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천백고지 휴게소와 습지 생태전시관에서 만난 새하얀 겨울 풍경
제주공항에서 내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새하얀 겨울 풍경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는 천백고지 휴게소였다. 여기서 1100고지는, 제주도 서귀포시 동문동과 제주시를 연결하는 1100도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고지를 의미한다.
설경으로 워낙 유명한 장소라서 겨울에 눈이 내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라산을 등반하지 않고도 멋진 자연의 면모를 확인하게 해줘 인기만점인 제주도 여행지 중의 하나였다. 나 역시도 이러한 이유로, 제주도 겨울여행을 계획하면서 천백고지를 필수코스에 포함시키게 됐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 도착한 제주공항은 따스한 햇살과 맑은 하늘로 가득찬 모습이었는데, 차를 타고 목적지에 가까워짐에 따라 주위의 풍경과 공기가 놀랍도록 달라져 이로 인한 압도감에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하지만 그 순간도 잠시 뿐, 양옆으로 눈꽃을 겹쳐 입은 나무들이 우리를 반기는 상황이 계속되자 끊임없이 감탄사를 내뱉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임을 깨닫고는 자연스레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에 몸을 맡겼다.
단, 1100고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겨울에는 특히, 폭설 등의 이유로 교통 통제가 되는 날들이 존재하니 반드시 홈페이지를 통해 도로 상황을 확인하고 길을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제주특별자치도 자치경찰단 홈페이지의 교통정보센터에서 미리 체크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내가 겨울의 제주와 만나게 된 첫날은, 도로 교통이 통제되는 날이 아니었기에 무사히 천백고지 휴게소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했다. 제주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바로 이동했더니,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이 점도 만족스러웠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온몸으로 밀려드는 찬바람에 맞서 주변을 걸으며 아름다운 순간을 만끽했다. 이때 당시에 눈은 내리지 않았고, 땅바닥까지 새하얗게 덮인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한기로 인해 차디찬 입김이 곁을 맴돌았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뿐만 아니라 장갑을 미처 챙겨오지 못해 갈 곳을 잃은 맨손이 새빨개질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할말 다한 거 아닐까 싶다. 무식한 자가 용감하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우리들이 그곳에 있었다.
습지보호지역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에 멧돼지 상습 출몰지역이라는 글자가 더해져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스쳐 지나가게 됐다. 그날에 마주한 흐릿한 하늘과 하얗디 하얀 나무들의 물결이 절경이었음은 물론이다.
제주 1100고지 습지보호지역에 대한 안내판도 걷는 동안 눈에 들어와서 카메라에 담았다. 한라산 고원지대에 형성된 대표적인 산지습지로 지표수가 흔치 않은 한라산의 지질특성을 고려해 봤을 때 매우 중요한 지역이 제주 1100고지 습지란다. 람사르 습지에도 등록이 되어 있다고.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생물과 고유생물이 서식함은 물론이고 경관, 지질 등도 보전할 가치가 충분해 이곳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2009년 10월 1일에 지정이 된 것이라고 하니 올해로 꼭 10년이 된 셈이다. 모르고 간 거지만, 이렇게 알게 되니 의미가 없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고상돈 동상이 눈에 띄었다. 1977년 9월 15일,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봉으로 불리는 에베레스트를 오른 제주출신 산악인이 바로 고상돈이다.
한라산 가까이에 자리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당당함을 뽐내는 기념비가 인상적이었다.
천백고지 휴게소 곳곳을 둘러보는 동안 빼놓아서는 안될 사슴 동상도 만났다. 백록상이라고 쓰여진 한자 위로, 위엄을 갖춘 채 한라산을 바라보는 사슴의 모습에서 기품이 엿보였다.
백록담의 전설 속 흰 사슴을 구현해 낸 동상 역시도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잠시나마 추위를 피하고자 1100고지 습지 전시관에도 들렀다. 1층에선 각종 기념품과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었고, 2층으로 올라가서야 벽면을 가득 채운 전시를 통하여 다양한 자료를 맞닥뜨리게 돼 흥미로웠다.
1100고지 습지는 물론이고 한라산에 대한 이야기까지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진과 글을 훑어보기에 좋았다. 꽁꽁 언 몸을 녹이기에도 안성맞춤이었고.
그리고, 전시를 관람한 뒤에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면 한라산 전경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뷰포인트가 존재하니 이 또한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하얀 눈이 쌓인 한라산은 장관이었고,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사이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맑은 하늘은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을 전해줘 짜릿함을 선사했다. 완전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실사판! 친구에게 신청곡을 부탁했더니 렛잇고 한 소절을 멋지게 불러줘서 이 또한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덧붙여, 이래서 사람들이 겨울에 제주도로 여행 와서 한라산 등반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찰나였다. 설원 사이를 가로지름으로써 경험하게 될 쾌감은 이보다 더할 텐데 감히 짐작도 되지 않아서, 언젠가는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좋겠다고 조용히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2019년 1월, 제주 겨울여행에서 내가 만났던 최고의 풍경은 1100고지와의 시간에 존재한다. 사진에 전부 다 담기진 않았으나 눈으로 직접 봤고, 그날의 온도와 분위기가 생생하게 머리 속에 저장돼 그리울 때마다 꺼내볼 수 있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다음에 또 겨울에 제주를 간다면, 그때도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다. 대신, 장갑과 손난로는 잊지 말고 챙겨갈 것을 다짐한다. 롱패딩 안에는 얇은 곳을 두툼하게 껴입고 당당하게 걸어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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