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여우각시별 :: 웨어러블의 괴력에 힘을 잃은 공항 이야기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꿈의 장소와도 같은 공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길래 기대했던 작품이 바로 드라마 <여우각시별>이었다. 그러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와 장르의 전환이 거듭됨으로써 당황스러운 감정이 밀려들어 어찌할 바를 모를 상황에 이르고야 말았다.


그리하여,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스토리 라인을 지녔던 드라마 <여우각시별>은 시작을 했기에 끝을 보긴 했으나 실망스러움이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각기 다른 비밀을 지닌 남녀가 인천공항 여객서비스팀의 일원으로 만나 함께 하면서 겪게 되는 사건사고를 중심으로 펼쳐진 에피소드 속에서 오래도록 이어져 왔던 인연의 끈을 발견함에 따라 사랑을 향하여 나아가는 부분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만나야 했던 놀라운 복선과 숨겨진 진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인천공항 입사 1년만에 사고뭉치로 전락해 여객서비스팀에 합류하게 된 한여름은 자신보다 겨우 한달 먼저 여서팀에 들어온 신입 이수연이 사수가 되자 불평불만을 쏟아내지만, 이곳에서도 여전히 인간 폭탄 신세를 면하지 못한 채 민폐 캐릭터의 전형을 선보인다. 이로 인해 한여름의 뒤치닥거리는 언제나 이수연의 몫이었다.


여서팀의 말썽꾸러기가 프로페셔널한 공항직원이 되기까지의 성장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뻔하고 많이 식상했다. 게다가 공항에서 발생하는 사건 대부분이 위험천만한 것이었어서 마음을 푹 놓고 바라볼 수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수연이 장애를 갖고 있는 인물로 웨어러블 보조보행물을 착용함으로써 괴력을 발휘하는 장면을 봤을 땐 제작진이 의도한 휴먼 멜로가 아니라 히어로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돼 혼란스러움이 더해졌다. 이것이 과연,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드라마가 맞나 싶어서.



게다가 어느 날 웨어러블이 오작동하게 된 것이 사랑 때문에, 한여름이 그 이유란다. 음, 이것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이 잘 안 왔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그곳을 오고가는 이들을 통한 감동과 따뜻한 사랑 정도면 됐는데 예상보다 더 어마어마한 걸 봐버려서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공항을 위협하는 존재로 겨우 등장시켜야 했던 것이 어둠의 조직에 몸 담은 폭력배들이라니......이거야말로 히어로물 속 영웅과 악의 대결을 극대화한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자극적인 장면과 사건들이 연이어 비춰지니, 그 속에서 휴먼 멜로가 빛을 발할 기회는 극히 적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이 순간 만큼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매일같이 수백개의 별들이 내렸다가 다시 떠나는 곳, 공항을 여우각시별로 지칭하며 만나게 된 장면은 정말로 동화 같았다. 


공항의 풍경과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다채롭게 보여질 때도 흥미로움은 고조됐다. 





이와 함께, 인천공항 계류장운영팀 고은섭이 계류장 운영팀장 박태희의 지시 하에 계류장 운영팀 대리 시제인이 보는 앞에서 위급한 상황을 멋지게 해결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이와 더불어 은섭에게서 임무를 전달받으면서 그를 향해 기특함이 내포된 미소를 지어보이던 통합운영팀장의 표정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후배들을 멋지게 이끌어주는 선배이자 팀의 리더들이 한데 모여 있던 인천공항은 부러움의 결정체이자 집합소와도 같았다. 제1터미널에서 제2터미널로 이동함에 따라 한여름과 이수연을 데려와 든든하게 이끌던 여객서비스팀장 양서군, 냉철해 보이지만 온기 가득한 내면을 지녔던 보안팀장 최무자 역시도 그런 의미에서 돋보였다. 







드라마 <여우각시별>은 웨어러블의 괴력에 묻혀버림으로써 공항의 진짜 이야기가 아쉬워졌던 작품이었다. 웨어러블까지는 이해하겠는데 괴력의 필요성은 잘 모르겠더라. 오, 그런데 기사를 찾아보다 재밌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낭만닥터 김사부'에 이은 강은경 작가의 차기작이 '여우각시별'에서 '인천공항 사람들(가제)'로 바뀌었다는 소식. 요 '인천공항 사람들'이란 가제가 기존에 공개된 '여우각시별'로 제목이 확정되고 기획했던 소재가 변경되면서 주인공 또한 달라졌음을 알게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던 흥미진진한 사실이 존재한다. 마블의 아버지라 불리는 故스탠 리의 오리지널 IP(지적재산)인 'The B-TEAM(더 비팀, 가제)'이 강은경 사단의 글라인으로 말미암아 한국 드라마로 탄생될 예정이며 전세계 최초로 선보이게 된다는 점, 나는 여기에 주목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퍼즐 조각을 맞춰보다 내리게 된 결론은 이렇다. "드라마 <여우각시별>이 전세계에서 최초로 만나보게 될 한국 히어로 드라마에 앞서 초석을 다지게 해주는 작품으로 낙점되었구나!"


이건 당연히 혼자만의 억측에 불과하지만, 기사를 보면 엉뚱한 상상으로만 치부될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급박히 스토리를 바꾼 데에는 이유가 없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 시청률이 10%에 가까웠지만 10%에 이르진 못했던 점은 아마 배우들의 열연만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한 답이 되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여름과 이수연, 채수빈과 이제훈. 두 배우의 케미가 좋았고 연기도 만족스러웠다. 캐릭터적인 아쉬움을 배우들이 잊게 만들어줘서 그게 참 다행스러웠다.



다만, 공항 직원들의 러브 스토리 중에서 은근히 현실적이면서도 훈훈함을 자아냈던 건 오대기, 나영주 커플이라는 게 반전. 혼자서도 멋지게 살 줄 아는 영주와 은근히 어리숙한 면이 없지 않은 대기의 사랑을 응원합니다!  


영주가 혼자 고기 구워먹을 때 군침 돌아서 혼났다. 드라마 <여우각시별>의 명장면이기도 했으니 잊지 말아야지. 



판타지적 히어로물에 휴먼 멜로의 색깔을 덧입혔던 드라마 <여우각시별>이었다. 공항의 진짜 이야기는 웨어러블과 그것을 장착한 인물의 초인적인 능력에 집중하게 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갔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공항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동화는 아주 잠시 뿐, 막장의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이 흠이지만 주인공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겠지.



드라마의 초점은 엇나갔지만 이걸로 히어로물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상승했으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근데 대체 왜, 이수연의 얼굴은 끝까지 안 보여주고 마무리를 한 걸까? 극 중에 그냥 스치듯 흘리고 간 떡밥 회수가 안 돼서 답답한 부분도 많은데 이건 또 어쩔거냐며.......여운이고 뭐고, 애매해진 상태에서 막을 내린 드라마 <여우각시별>은 결국, 마지막까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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