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의 하루/드라마의 시간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 :: 배우들의 호연이 빛났던 로맨스 퓨전 사극

초록별 2018. 11. 14. 06:19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이 tvN 월화 드라마의 자존심을 세우며 10%가 넘는 두 자리 시청률로 종영했다. 기억이 소실된 왕세자와 최고령 원녀가 함께 한 100일 간의 혼인담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는 예상 밖의 전개로 놀라움을 경험하게 만들었다.


왕세자 이율이 팔도의 원녀와 광부를 모두 혼인시키라는 명을 내림에 따라 스물이 넘어서도 결혼하지 않은 이들은 어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백년가약을 맺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때 왕세자였던 이율이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남정네 원득이가 되어 신분 하락의 순간을 맞닥뜨리면서,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 되어 발생하게 되는 에피소드들이 흥미로웠다. 이거야말로 자업자득이 아닌가 싶었으므로.  


게다가 이 명령이 오랜 가뭄을 잊게 만들어줄 단비를 기다리며 선택한 해결책이라는 점도 어처구니 없게 느껴졌는데,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힘으로 제어하려 했던 어리석음이 전해져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조선시대에 실제로 존재했던 용어이자 결혼문화의 일종이었다는 점도 마찬가지. 




뭐 어쨌든,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이 선택한 소재 자체는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으므로 스토리 전개에 따른 기대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회차가 거듭될수록 이야기의 흐름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지고야 말았으니......이 일을 어찌할꼬. 


작품의 장르는 일단 사극으로 보여졌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익히 접했던 신조어와 트렌드를 반영한 장면들이 많아서 퓨전이라는 단어가 절로 덧붙여졌다. 여기까지는 사실,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억지스러운 설정이 무리수가 되어버린 사건의 연속과 도를 넘어선 캐릭터의 등장은 실망감을 안겨줄 뿐이었다.


원득의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 꾸민 살인사건, 세자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세자빈의 행보가 특히 그랬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싶진 않지만,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그냥 뱉는 게 낫겠지? 한 마디로 막장 드라마의 끝판왕이었다고.



그 와중에 출연진의 호연은 빛나서 그게 참 안타까웠다. 배우 도경수의 활약은 엑소 디오를 잠시 잊게 하며 왕세자 이율과 아쓰남 도원득을 통해 진가를 증명했다. 연기도 참 좋았지만,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옴으로써 절로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던 순간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양반 윤이서와 양인 연홍심으로 표준어와 사투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시선을 사로잡은 남지현 역시도 캐릭터에 재대로 몰입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었다. 송주현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모습이 특히나 인상깊었다.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남다른 지식과 능청스러움이 최고였던 정제윤 역의 김선호도 배우에게 맞춤옷처럼 들어맞아 친근함이 더해졌다.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할 말을 할 줄 알며 승부의 결과를 인정할 줄 아는 면모도 돋보였다. 




율과 제윤은 이서를 사이에 둔 나름의 라이벌이었지만, 궁궐에서 둘이 함께 할 때 뿜어져 나오던 은근한 브로맨스의 기운 역시도 재미를 더했다. 서로를 향한 썩소가 그들의 마음을 대변하던 장면에선 웃음이 빵 터져 나왔다.


이와 함께 세자가 왕이 되어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제윤이 큰 힘이 되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됐다. 





"마음은 얻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것일 뿐."


마음을 준 이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음에도 미소를 짓던 제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실력을 인정받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멋지게 해냈을 거라고 믿는다. 특유의 능글맞음과 함께.



결말이 가까워졌을 때 원녀와 광부의 억지 혼인 풍습을 폐지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것은 그냥 나만의 작은 소망이었던 걸로. 근데 이 제도를 이서와 율을 이어주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 다시금 시행한 점은 좀 아쉬웠다. 


어찌됐든, 풀어놓은 이야기를 수습한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싶다.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 같은 경우에는 작품의 내용보다 캐스팅에 기댄 작품이었다는 느낌이 강했어서 말이지.



주연 배우들은 물론이고 조연 배우들의 감초 연기도 굉장했다. 그중에서도 홍심의 양아버지를 찰떡같이 소화한 정해균 배우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까지 봐온 드라마에서 악역에 가까운 강한 연기를 많이 봐왔기에 이번 역할이 윤활유와 같은 새로움을 부여하지 않았나 싶다.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던 이야기를 그래도 끝까지 지켜보게 해준 것은 역시나 배우들이었고, 그들의 힘이 컸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은 나에게 있어서 배우들의 호연이 빛났던 로맨스 퓨전 사극으로 남게 될 듯 하다. 이외에, 다른 말은 필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