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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데니스 로드킨 내한 공연

초록별 2018. 11. 11. 15:45

유니버설발레단이 선보인 <라 바야데르> 마지막 공연을 관람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매진으로 이끈 무용수들과의 만남은 취소표를 예매하게 됨으로써 극적으로 성사되었는데, 그랬기에 더 소중하고 값진 시간으로 기억 속에 남았다. 


라 바야데르는 프랑스어로 '인도의 무희'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이와 함께, 무용수 출신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올해 무대에 오르게 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없지 않았다.  


더불어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의 설명을 통해 줄거리와 작품 속 주요 발레 동작을 먼저 만나보는 것이 가능했기에 공연에 대한 이해가 훨씬 수월했다. 




[CAST]


니키아 : 스베틀라나 자하로바

솔로르 : 데니스 로드킨

감자티 : 강미선

황금신상 : 강민우


힌두사원 최고의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행복했던 순간은 잠시 뿐이었다. 이를 질투한 승려 브라민의 방해와 권력에 현혹돼 라자왕의 딸 감자티 공주와 미래를 약속해버린 솔로르로 인해 니키아는 절망하고, 이로 인해 둘의 운명은 엇갈리게 되고야 말았으니.


1막에선 니키아와 솔로르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함으로써 달콤한 꿈이 가득 담긴 2인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와 함께 솔로르를 사이에 둔 니키아와 감자티의 대립 역시 볼만 했다. 



결혼 피로연이 펼쳐지던 2막은 화려함 그 자체였는데, 무대는 물론이고 다양한 춤의 향연이 눈을 사로잡았다. 특히 인디언 댄스와 북춤의 카리스마는 강렬한 음악이 더해짐으로써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반면, 니키아의 독무 속에서 느껴지던 처연함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인도의 황금제국을 배경으로 한 발레 공연답게, 의상의 다채로움 역시도 눈에 띄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니키아의 붉은 옷이 특히나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3막에서 펼쳐지는 망령들의 왕국은, 발레 <라 바야데르>를 3대 발레 블랑(백색 발레)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명장면으로 채워졌다. 하얀 튀튀와 스카프를 두른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우아한 춤사위는 잔잔한 음악 안에서 이유 있는 침묵을 경험하게 했던 시간이었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생각했던 것 만큼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음으로 인한 아쉬움이 존재하긴 했지만, 아라베스크를 시작으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던 발레리나들의 포스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비중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결혼 피로연에서 확실하게 존재감을 발산해 준 황금신상의 유려한 몸놀림 또한 감탄을 자아냈다. 온몸에 흩뿌려진 금가루로 인한 놀라운 비주얼과 더불어, 움직일 때마다 보여지던 눈부시면서도 완벽한 동작의 완성이 박수 갈채를 불러 일으켰다.


절도 넘치는 동작의 향연으로 안내했던 강민우 발레리노였다. 







발레 <라 바야데르>의 주역으로 무대에 선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데니스 로드킨은, 최고의 내한 공연을 선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볍고 정확한 동작과 절절한 연기의 어우러짐이 환상적이었기에 환호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우연한 행운이 가져다 준 뜻밖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연을 보러 간 나를 칭찬한다. 



무용수들의 멋진 발레 공연은,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전속 지휘자인 미하일 신케비치의 리드 아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가 함께 함으로 인해 웅장함이 더해졌다. 지금까지 관람했던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 중에서 유일하게 오케스트라를 만나보는 게 가능했던 때였으므로 더 그랬다.


3층 B석에서 무대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공연을 즐길 수 있어 좋았는데, 다만 예매한 좌석이 출입구에 붙어 있는 위치였어서 그게 조금 불편했다. 안 보이는 장면이 없어서 그게 그나마 다행스러웠고, 경험을 해봤으니 다음에 예매할 땐 참고를 해야겠다 다짐했다. 



커튼콜이 막이 내려갔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승려 브라민 역의 곽태경 발레리노와 황금신상 역의 강민우 발레리노가 함께 나오며 관객들에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브라민은 니키아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장본인이기도 한데, 값비싼 장식품으로 치장한 모습 속에서 눈빛에 담긴 잔혹함이 공포감을 자아냈다. 황금신상 역시도 황금신상의 자태를 비로소 온전히 드러내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파랑파랑한 조명으로 인해 이 모습이 제대로 사진에 담기지 않아 슬펐는데 천만다행이었다.


퇴장하기 전, 브라민과 황금신상의 눈맞춤 또한 볼만 했다. 




감자티 공주로 무대에 선 강미선 발레니나도 좋았다. 공주다운 기품이 느껴짐과 동시에 솔로르를 놓치지 않기 위해 표독스러움을 뿜어내던 장면들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다른 날엔 니키아로도 무대에 올랐다고 해서 궁금해졌다. 공연 포스터의 주인공이기도 했기에.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 마지막 공연 속 커튼콜은 오래도록 진행되었고, 관객들의 열띤 화호와 박수갈채와 감탄사가 끝도 없이 이어짐으로써 완벽한 마무리를 장식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임을 알게 해주었던 세계적인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무대였다.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이 흐트러짐 없는 동작의 연속으로 완성돼 놀라움을 자아냈다. 사랑으로 인해 받아들여야만 했던 희로애락과 선택의 시간을 통한 감정의 물결이 온몸으로 뻗어나와 객석에까지 오롯이 전달되며 니키아를 향한 몰입을 도왔다.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역으로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 남자무용수상을 수상했다는 발레리노, 데니스 로드킨 역시 최고였다. 무게감 있는 점프 후에 가볍게 발을 내딛음으로써 보여준 착지의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니키아와 감자티 사이의 갈등이 얼굴 표정에서 깊이 드러나는 점도 눈여겨 볼만 했다.



두 무용수의 가볍디 가벼운 몸놀림과 멋진 동작이 하나되어 만들어낸 파드되 역시도 화룡점정이었다. 꼭 보고 싶었던 <라 바야데르>를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와 데니스 로드킨의 내한 공연으로 마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덕분에 발레 공연의 재미를 다시금 빠져들 수 있게 돼 이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니었나 싶다. 몸의 언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지닌 무게와 깊이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어 즐거웠다. 






진짜 좋았는데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다. 내한공연이 처음이기도 했지만, 우아함과 강렬함이 균형 있게 녹아든 발레 <라 바야데르>의 매력을 알게 된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이국적인 색채가 발레의 정적인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재밌는 공연이 탄생되었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다음에 또 발레 공연을 관람하러 갈 날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라 바야데르>가 지금까지 본 공연 중에선 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공연으로 발레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게 해준 무용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