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등등곡 :: 김영운 전캐 및 기타등등 공연 관람 후기 (스포 있음)
2024년 6월에 초연된 뮤지컬 <등등곡> 관람 후기를 풀어볼까 한다. 아마도 이 작품이 올해 7월까지의 관극을 기준으로 가장 많이 본 공연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7월 한 달 동안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대학로 TOM 1관으로 발걸음을 하는 일이 잦았으니 할 말 다한 거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쓰여진 팩션 사극 뮤지컬 <등등곡>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이렇다. 한양도성에서 유행했던 놀이로 알려진 등등곡을 즐기던 선비들과 정여립의 모반 사건으로 인하여 수많은 동인들이 희생되며 서인들과의 대립이 극대화된 기축사화가 얽히고 설켜 펼쳐지는 이야기가 무대 위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등등회의 수장으로 군림했던 김영운이 혁명을 도모하려 애씀으로 말미암아 최윤, 초, 정진명, 이경신과 함께 했던 모임이 와해됨으로써 맞닥뜨려야 했던 비극이 결말까지 이어지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그 속에서 배우들의 다재다능한 면모가 빛을 발했던 반면, 대본의 엉성함이 도드라져 서사 자체는 아쉬움을 남겼음을 밝힌다.
그런 의미에서 재관람 혜택으로 대본집이 아닌, OST를 증정했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넘버가 정말 좋았다.
[CAST]
김영운 : 김지철, 유승현, 김재범
최윤 : 안지환, 정재환
초 : 강찬, 김서환
정진명 : 김경록, 박선영
이경신 : 임태현, 황두현
트리플 캐스팅으로 구성된 김영운 전캐를 만나 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세 배우 모두 혁명에 일가견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각기 다른 개성을 선보이며 시선을 사로잡아 부족한 개연성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 때가 없지 않았다. 지철영운은 날선 시선을 표출함과 동시에 경신의 부채를 자신이 손에 쥔 부채로 날리던 장면에서 드러나던 매서움이 놀라움을 전했다. 승현영운은 초의 과거사를 관객들에게 자세히 알려줌과 더불어 죽음을 앞두고 상전을 향하여 일침을 가하던 찰나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재범영운은 자신이 갖고 있던 단검이 아닌 경신의 장검으로 최후를 맞이할 때 확인할 수 있었던 강렬한 눈빛과 꺾이지 않는 기개가 진한 여운을 남겼다.
지환윤의 귀를 사로잡는 음색과 상소문에서의 절절한 외침 또한 감탄을 자아냈다. 재환윤은 멋드러진 춤사위와 결말에 다다라 먼저 간 선비들에게 건네는 말들이 눈물을 불러 일으켰다. "영운이 형님, 매화가 필동 말동 합니다.", "진명아, 매화주 비싸서 못 사왔다."는 읊조림이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노비인 척 할 때와 아닐 때의 온도차가 남달랐던 찬초와 매 순간 품위를 잃지 않았던 서환초의 차이도 재밌었다. 적재적소에 웃음 포인트를 녹여내 긴장감을 완화시키던 찬초와 승현영운이 재주를 부려 보라고 이르자 날렵한 옆돌기를 시도하던 서환초의 몸놀림도 눈여겨 볼만 했다.
경록진명과 선영진명은 사랑받는 막내였으나 동인백정으로 지칭되는 정철의 아들이었던지라 맘을 아리게 할 때가 없지 않았다. 시원한 가창력이 돋보였던 경록진명과 거침없는 턴을 유려하게 뽐내던 선영진명의 모습도 최고였다.
태현경신은 등등회의 그 누구보다 진명을 아꼈고, 초에게 분노의 눈빛을 쏘아대던 한때가 공포감을 조성하던 연기가 매력적이었다. 이와 달리, 두현경신은 고음을 무리없이 소화하던 노래 실력이 대단했다.
3번의 공연 모두 스페셜 커튼콜이 진행되었고 전부 다른 곡을 만날 수 있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제일 처음 마주하게 된 스콜 넘버가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등등곡'이었다. 이로 인하여 다섯 배우가 '등등곡'을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으로 무대의 막이 올랐는데, 첫곡이 끝나고 나서 다들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인 와중에 열과 성을 다했으니 또 추잔 말은 말라고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철영운이 이따 또 춰야 한다고 강조를 해서 웃음이 빵 터졌다. 여기에 더해 지철영운이 경록진명과 태현경신을 보며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말을 내뱉어서 다시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날 이루어진 '등등곡' 넘버 후에는 태현경신이 승현영운에게 볼 때마다 춤이 는다는 한 마디를 날려 객석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우는 태현경신에게 형님은 울면 못 생겨진다면서 본인은 미소 지으며 눈 감던 선영진명의 마지막엔 눈시울이 붉어지고야 말았다.
'길삼봉이 돌아왔다' 넘버에서 경신을 제외한 넷이 몸에는 새하얀 두루마기를 걸치고 얼굴에는 탈을 쓴 채로 분신술을 쓰듯이 움직이며 노래하던 한때도 탄성을 내뱉게 도왔다. 웰메이드 창작 초연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여기에 미치지 못해 슬펐다.
배우들이 곁들인 디테일이 그나마 스토리 보충에 힘을 실어줘서 다행스러웠다.
대본에 담긴 등등회 뜻은 김영운과 기타 등등이 전부였지만, 오를 등에 굽을 곡을 써서 뜻을 올려도 굽어지는 세상이라 말하던 승현영운과 오를 등자를 써서 오르고 또 오르라는 의미라는 말을 더한 재범영운의 한 마디가 그들이 모임을 결성한 의의에 힘을 실어줘서 뜻깊었다.
덧붙여 위의 사진은 공연장 로비 한 켠에 마련되어 있던 뮤지컬 <등등곡> 포토존이다. 공연 전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약간의 변화가 생기는데, 이것도 나름의 눈물 포인트와 다름 없었다.
사극 뮤지컬 중에서 꽤 괜찮은 창작극이 탄생한 것 같긴 한데, 이걸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초연이 꽤나 성공적인 흥행을 이어갔다고 해서 방심은 금물이다. 어쨌거나 김영운 전캐를 포함하여 작품과 관련된 기타등등의 이야기를 버무린 공연 관람 후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