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V 에버 애프터 :: 프란체스와 레미가 자꾸만 생각이 났어 (반정모, 김민범, 김병준)
2022년 8월 25일 목요일 오후 8시,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관람한 뮤지컬 <V 에버 애프터>는 특별히 날짜까지 잊고 싶지 않은 공연이었으므로, 이렇게 기록해 두려고 한다. 무대에 오르는 날이 계속될수록 배우들의 존재감이 한껏 발휘되며 마음을 사로잡는 중이라 행복하다. 덕분에 막공이 다가오고 있음을 체감하게 되는 건 슬프지만 어쩌겠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건 당연한 법인데 말이다.
이날의 공연은 미리 잡아둔 게 아니라 인생주간 할인 40%가 진행된다는 내용을 발견하자마자 즉흥적으로 예매한 거였는데, 결론적으로 보러 가길 잘했다 싶어 뿌듯했다. 연기와 노래의 탁월한 완급조절에 적당한 애드립까지 부족함이 없었으므로, 공연장을 나와서도 기분이 참 좋았다. 더불어 안내멘트는 반정모 배우였다.
[CAST]
프란체스 : 반정모
레미 : 김민범
조이 : 김병준
반프란이 등장해 '기도'를 부를 때부터 목이 좋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린 하루였다. 범레미가 '신이세요?'를 열창할 때 나무 뒤에 숨어 바라보던 반프란의 미소와 '생각이 났어'에서 사과를 건네주기에 앞서 옷으로 깨끗하게 닦아주던 세심함도 기억에 남았다. '노래 중의 노래'에서 손수건으로 상처난 손 주변을 대충 한두 바퀴 두르는 척하다 반프란이 눈 앞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면, 사정을 알아차린 범레미가 꼼꼼하게 묶어주는 모습도 인상깊었다.
'그랬잖아'에서는 반프란이 사랑에 빠진 존재가 뱀파이어임을 고백하는 것에 놀라지 않고, 자신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음을 현란한 랩 실력으로 쏟아내던 병준사제의 솔직함이 도드라질 때가 있었다. '사냥'에선 범레미가 흡혈의 본능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뱀파이어 특유의 잔혹함을 맞닥뜨리게 해줬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고음과 저음을 자유자재로 사용함에 따라 일깨워준 탄탄한 넘버 소화력이 감탄을 자아내서 귀가 뻥 뚫렸다. 성악을 전공한 실력자다운 성대의 짱짱함이 매력적이었다. 자신을 버리고 수도원으로 떠난 프란체스를 다시 만나려 300년 시간을 뛰어넘게 된 레미의 애틋함이 '기다려줘'를 통해 극대화되던 순간에는 넘버에 스며든 락 사운드의 강렬함마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일말의 희망과 사랑의 위대함이 깃든 울림이 대단했다. 반면, 어쩔 수 없이 레미와의 이별을 선택한 반프란의 '해피 에버 애프터'는 절절하기 그지 없어서 들을수록 눈물이 났다.
300년 후 세상에서 문샤이닝 파티의 시작을 알린 반샤이너의 등장도 좋았다. 특히, 이번 주에 공연하는 첫날이었던지라 오래간만이라면서 뱀파이어들을 반가워하던 순간이 웃음짓게 만들었다. '문샤이닝'은 살랑거리는 몸짓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으니 더 이상의 말은 생략한다. 범레미가 나타나자 뉴페이스라며 기뻐하던 반샤이너는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을 지어서 마음이 아렸다. 프란체스를 빼닮은 반샤이너를 본 범레미의 멈칫하던 한때도 마찬가지였음은 물론이다.
'프란체스를 생각하면'에서 프란체스를 생각하면 죽을 수 있다는 레미에게 죽도록 신나게 춤추며 죽도록 좋아서 죽으면 어떠냐고 말해주던 샤이너의 농담 섞인 다정한 위로가 따뜻했다. 신이 죽었음을 기록한 책을 찾아달라며 범레미가 깜찍한 볼빵빵 포즈를 시전하자 귀여워서 도와주는 건 아니라며 마음을 뺏겨버린 반샤이너의 모습도 예뻤다. 여기에 더해 모든 사랑은 프라이버시라고 말하며 볼빵빵 포즈를 따라하는 반샤이너를 보다 손가락으로 콕 찔러 볼의 바람을 빼버리던 범레미도 폭소를 만발하게 도왔다. '댄스 챌린지'에서 팔을 번쩍 치켜올려 "저요!"를 외치며 춤부심을 부리던 범레미도 최고였다. 그러다 결국 무아지경에 빠져버리고 마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300년 전에 오자마자 머리를 너무 써서 나중에 흰 머리가 났다며 나중에 머리카락 전체가 새하얘지는 거 아니냐며 중얼중얼 혼잣말을 늘어놓던 병준조이의 눈 앞에 은발의 범레미가 서 있던 순간도 재밌었다. 뱀파이어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후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비주얼을 표출하려 메이크업에 변화를 꾀하던 병준조이의 디테일도 멋졌다.
참고로 븨에버를 관람하는 도중에 제일 좋았던 장면은 '종탑에서' 넘버를 중심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반프란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절정으로 치닫던 한때였음을 밝힌다. 범레미를 품에 안고 절규하며 토해내던 "기다릴게!", 그 한 소절이 심금을 울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한 반프란의 감정씬이 클라이막스와 다름 없었다. 그전에 프란체스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던 범레미의 '태양을 끌어안고'도 눈물이 복받쳐 오르게 만들었더랬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를 찾아온 뉴페이스의 머리에서 이날따라 모자가 자꾸 떨어져서 때때로 웃음이 났다.
이와 함께 과학자 조이가 레미를 위하여 타임머신을 작동시키던 손짓, 샤이너가 문샤이닝 파티를 위하여 어두운 무대를 밝히던 손놀림, 레미의 손에서 피어나던 빛의 움직임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그리하여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마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콜은 '생각이 났어'였고, 연보라빛이 감도는 범레미의 헤어 스타일이 보랏빛 조명 아래서 눈에 쏙 들어와 보기 좋았다. 그리고 뮤지컬 <V 에버 애프터> 무대 왼쪽은 수도원, 오른쪽은 타임머신과 샤이너의 집으로 주로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덧붙여 오른쪽 무대 위의 나무에서도 레미의 모습을 목격하는 일이 가능하다.
븨에버는 유독 무대가 뿌연 감이 없지 않은데, 이게 또 묘하게 공연과 잘 어울려서 흥미롭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대 천장에 매달린 여러 개의 달이 각기 다른 쓰임새를 선보일 때도 관심을 집중시켰다.
손을 가슴에 얹은 반프란과 범레미의 모습도 어여뻤다. 반프란의 제복핏과 범레미의 왕리본과 프릴 달린 블라우스 패션도 캐릭터와 잘 맞아 떨어져 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프란체스와 레미 배역을 맡은 배우들의 의상 속 디테일도 저마다 다르니까 이 점도 직접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컨디션이 좋아보였던 반샤이너는 공연 말미에 다다라 샤우팅을 시원하게 질러줘서 이 또한 짜릿함을 안겨주었다. 허스키한 저음을 바탕으로 고음도 꽤 잘 올리고 샤우팅도 가끔씩 들려줘서 반프란과 반샤이너의 음색에 반하게 되는 일이 상당했다. 뿐만 아니라 회차가 거듭될수록 득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보여져 만족스럽다.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느라 선물을 건네는 반프란이나 그걸 손에 쥐는 범레미나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좋았다. 스페셜 커튼콜을 통하여 사과를 슥슥 닦아서 레미에게 전하는 반프란이 박제돼 기뻤다.
본공연과 달리, 스콜에선 레미에게 씌워줄 화관을 본인의 머리에 착용하고 나오며 완벽한 팬서비스를 선물한 반프란도 최고였다. 레미를 위하여 스스로 손에 상처를 낸 뒤에 팔을 쥐어짜 피를 아낌없이 주려 애쓰던 반프란의 사랑도 잊지 못할 거다. 자신 때문에 빈혈로 쓰러진 반프란을 보고 아파하며 피를 마시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던 범레미의 노력도 눈물겨웠다.
프란체스, 레미, 샤이너, 조이를 볼 때마다 자꾸 더 보고 싶어지게 만든 뮤지컬 <V 에버 애프터>였다. 이때 진행된 스페셜 커튼콜의 제목인 '생각이 났어'처럼 븨에버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충만하게 채워지는 나날들이 매우 소중하다. 그러니 남은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한 마음껏, 공연을 즐기며 후회하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