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V 에버 애프터 프리뷰 :: 혼란한데 재밌어! (반정모, 김민범, 김병준)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V 에버 애프터> 재연 프리뷰를 관람했다. 작년에 불가사리(MJ Starfish) 신작으로 초연됨에 따라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생각보다 빠르게 무대 위에서 만나보는 일이 가능해져 기뻤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코로나가 급격하게 확산된 시기 동안 칩거 생활을 유지했던 관계로, 못 보고 넘어간 작품이었던지라 호기심이 커졌기에 공연 당일이 하루 빨리 다가오기를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던 것이 사실이다.
참고로, 뮤지컬 <V 에버 애프터>의 줄거리는 이렇다.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17세기 초를 시작으로 3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사랑을 선보이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특징이었다. 그리하여 정적들이 보내오는 암살자로 인해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마음 편히 쉴 틈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공국의 후계서열 1위인 프란체스가 숲에 사는 뱀파이어 레미와 만나며 펼쳐지는 스토리 전개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레미는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 성 근처에 숨어 있다가 프란체스의 칼에 쓰러지는 암살자들의 피로 갈증을 해소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고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프란체스가 숲에서 레미와 우연히 마주하게 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Cast]
프란체스 : 반정모
레미 : 김민범
조이 : 김병준
일단 븨에버가 인생 자첫이었던 입장에서 보면 볼수록 혼란스러움이 극대화되었던 공연임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음을 밝힌다. 이러한 이유로 불가극이 자랑하는 김운기 연출, 이희준 작가, 박현숙 작곡가 조합 특유의 개성 넘치는 서사, 무대, 넘버를 새로이 확인하게 돼 흥미로웠다.
불가극이 자랑하는 독보적인 특성을 마주한 관객들의 감상평은 그런 의미에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 마련인데, 븨에버는 첫 관람만으로도 호를 연발하게 만들어서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만나 본 희작극 중에서 혼란함이 그나마 덜해서 가장 빠른 이해를 도왔고, 넘버의 중독성이 어마어마해서 귓가를 맴도는 중독성이 기대 이상이었던 것이다. 근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보자마자 치일 줄은 몰랐다.
뮤지컬 <V 에버 애프터>는 단순해 보이는 시놉시스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라 한 번의 관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작품을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손에 피를 묻힌 채 삶을 영위해야 했던 프란체스와 흡혈을 하지 않고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레미, 수도사가 되어 신을 섬기기로 맹세했으나 사랑에 빠져버린 프란체스와 신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로 이별의 아픔을 경험하게 된 레미의 극명한 대비 역시도 감명깊었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더해 300년 후의 세상에서 온 과학자 조이로 인하여 만나게 된 샤이너와 레미의 관계도 눈여겨 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이날 처음으로 마주한 세 명의 배우가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반프란은 뛰어난 검술 실력과 완벽한 제복핏으로 시선을 사로잡았고, 상처난 손을 손수건으로 묶으려다 일부러 실패하며 레미의 도움을 빌리려 애쓰던 허술한 수작이 빤히 보여서 웃음이 났다. 반면에 반샤이너는 '문샤이닝'을 통해 선보인 유려한 몸동작과 여기에 어우러진 까리한 춤선이 멋져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다만, 개그 포인트를 잘 살리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건 또 그것대로 좋았다. 넘버를 소화할 때 중저음으로 낮게 깔리던 목소리와 공연 말미에 다다라 락발성으로 내지르던 고음도 최고였다.
민범 레미는 화사한 은발이 매력적인 뱀파이어로 순진무구한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서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실버 싫어!"를 외칠 때 맞닥뜨리게 된 포즈에도 웃음이 빵 터졌다. 프릴 달린 셔츠와 왕리본이 잘 어울리는 데다가 특유의 소년미가 돋보였고, 기대 이상의 성량과 고음으로 귀를 기울이게 도와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기다려줘'에서의 마지막 부분이 뇌리에 콕 박혔다.
병준 조이는 멀티 캐릭터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랬잖아'에서 도드라지던 랩 실력이 기억에 남았고, 안무감독에 걸맞는 몸짓 덕택에 춤출 때마다 눈길이 절로 갔다. 레미한텐 친절하고 샤이너한텐 냉혹할 수 밖에 없는 캐릭터의 서사도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세 배우 모두 이 공연으로 처음 본 거였는데, 취향에 들어맞는 연기와 노래가 눈 앞에서 펼쳐져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안무도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대 위를 끊임없이 종횡무진하던 이들의 신인다운 풋풋함도 보기 좋았더랬다.
시간의 흐름에 맞춰 흘러가다가 궁금증을 증폭시킨 장면의 진실을 일깨워주고자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내던 순간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공연 도중에 배우들의 리드 하에 관객들의 스트레칭을 독려하던 한때는 예전에 봤던 뮤지컬 <해적>이 생각나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덧붙여 이날 내가 앉았던 좌석은 1층 N열이었는데, 냉방 시스템이 빵빵하게 가동됨으로써 추위에 떨어야 했던 기억도 잊지 못할 것이다. 얇은 긴팔 가디건만으로는 추위를 많이 느껴야 했으므로, 이 자리를 예매해서 뮤지컬 <V 에버 애프터>를 보러 갈 예정이라면 부디 두터운 겉옷을 챙겨 가기를 바란다. 대신, 시야 자체는 굉장히 쾌적했다. 무대와의 거리감이 좀 멀긴 했다는 걸 제외한다면, 공연을 전체적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요즘 진행되는 공연 중에 프리뷰 할인 40%가 흔치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덜컥 티켓팅을 완료하여 관람을 하기로 선택한 것 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븨에버에 빠져버리고야 말았다. 근데 생각해 보면 이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뮤지컬 <V 에버 애프터> 3차 티켓 오픈일이었는데, 나날이 작품의 인기가 늘어가고 있어 원하는 좌석을 예매하진 못했다. 그래도 내 자리 하나만 존재한다면, 재관람 카드 도장찍기에 성공하여 실황 OST를 증정받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혼란한데 재밌었던 공연과의 운명적인 만남 덕택에 다시금 덕질의 묘미를 절절히 실감하게 돼 즐겁다. 무섭게 쏟아져내리는 비를 뚫고 달려가 참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 행복했다. 공연 전 안내멘트로 흘러나온 병준 조이의 목소리와 함께 이루어진 새로운 작품의 관람이 맘에 쏙 드는 취향극으로 이어져 짜릿하기 그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