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킬롤로지 ::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의 아이러니 속으로
연극 <킬롤로지>는 미디어가 가진 힘과 폭력성이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상관관계는 물론이고, 사회적 약자일 수 밖에 없는 개인이 이러한 현실에 노출됨으로써 발생되는 무자비한 사건에 문제를 제기하며 거듭 곱씹어 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특히, 다양한 장르의 미디어 속에서 예술을 창조하는 이들을 향한 알란의 일침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위치에 자리한 객석의 나를 돌아보게끔 도와 보는 내내 생각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과 사회 각자가 무거운 책임감을 통감하며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달에 관람한 연극 <킬롤로지> 후기를 이제서야 쓰는 관계로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덕분에 연극열전이 올려준 관객과의 대화 내용을 읽어 볼 기회가 생겼고, 그리하여 초재연의 차이점과 더불어 배우들의 이야기까지 만나보게 돼 뜻깊었다.
그러나 관대로 인하여 공연 속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보다 더 모호해진 점은 혼란스러움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관객들 못지 않게 배우들 역시도 이러한 이유로 난감한 상황을 경험했다고 하니, 말 다한 거다. 이로 인해 작가 게리 오언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는데, 그럴 수 없어서 아쉽다.
현실과 환상을 적절히 섞어 버무린 이야기의 매력과 부조리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는 잘 알겠으나 조금 더 명확하게 이야기를 끌고 갔더라면 더 좋았을 법 했다.
어쨌든 이날이 연극 <킬롤로지> 세 번째 관람의 날이었는데, 역시나 한 번 더 작품을 마주하니 예전보다 눈과 귀에 들어오는 게 훨씬 많아서 보길 잘했다 싶었다. 그러나 보고 나면 진이 빠지는 공연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CAST]
알란 : 윤석원
폴 : 오종혁
데이비 : 은해성
재연 첫 관람 이후에 다시 만나고 싶었던 석원 알란을 볼 수 있어 좋았던 연극 <킬롤로지>와의 시간이었다. 공연이 계속될수록 무르익어 가는 석원 알란의 연기에 깊이 빠져들게 돼 한동안 헤어나올 수 없었다. 이날은 1막 마지막 장면에서 절규하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이 분노로 변해 폴을 향하던 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싶다. 2막에서 데이비가 아기였을 때를 떠올리며 눈물로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행복했던 과거의 시간을 설명하던 알란 역시 최고였다.
쫑폴은 동적인 캐릭터를 선보이며 눈길을 잡아끌었다. 책상 위에 다리를 꼰 채로 의자에 기대거나 술을 마시는 등의 움직임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게임에 대해 말하면서 동시에 직접 몸으로 시연하는 장면도 좋았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에단을 파양하기로 결심하며 대사를 내뱉을 때의 얼굴이 온통 눈물 범벅이었다는 점이다. 목소리는 담담하지만 표정은 그게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덧붙여 폴이 에단의 아버지일 땐 알란을, 어린 폴리일 땐 데이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해성 데이비가 정말 많이 좋아져서 감탄했다. 처음 봤을 때 대사를 버벅이는 일이 많아서 조금 안타까웠는데 이날은 실수가 거의 없어서 만족스러웠다. 대사의 강약 조절은 물론이고 적절한 손동작과 섬세한 표정 연기가 더해져서 눈을 떼지 못했다. 특유의 소년스러움에 디테일이 추가되어 한층 더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내가 다 뿌듯했다. 대사칠 때마다 도드라지던 보조개와 에디 렌달을 외칠 때 들려오던 렌달 발음도 최고였다.
하지만 영상 때문에 괴로워하는 데이비의 모습이 기둥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건 좀 슬펐다. 기둥 때문에 좌석에 따라 시야 제한이 생기는 사실을 연극열전이 알았다면, 삼연에서 기둥은 없애거나 다른 소품으로 대체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폴리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일 때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고개를 위쪽으로 향하며 별을 올려다 보던 해성 데이비의 뒤통수도 짠했다.
경계가 불분명한 이야기의 아이러니 한가운데에 존재하는 연극 <킬롤로지>로 인해 보는 이들에 따른 해석 역시도 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 사람 앞에 놓인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생겨나지 않도록 사회적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동안 못 봤던 쫑폴을 봐야 했기에 자둘자막이 자셋자막으로 변해버린 공연과의 하루였다. 덕분에, 이로써 킬롤 초연과 재연 전캐스트를 완성하는데 성공했으므로 후회는 없다. 깔끔하게 자셋자막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