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 관객과의 대화까지 함께 해 더 알찼던 시간 (최연우, 정휘)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는 캐롯 작가가 연재하고 있는 동명의 다음웹툰이 원작이며, 옴니버스로 구성된 에피소드 중에서 '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라는 제목의 두 번째 단편을 무대로 옮겨와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을 중심으로 무대 위에 펼쳐진 그들만의 우주는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주었는데, 이를 통하여 공연의 타이틀은 물론이고 웹툰의 제목에 걸맞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참고로, 이제부터 써내려갈 내용에는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힌다.
우주 비행사를 꿈꾸는 제이와 그녀를 사랑하는 은기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은기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꿈도 포기할 수 없는 제이는 1년간의 우주비행을 떠나려 하고, 제이가 존재하지 않는 기나긴 시간을 견디기 힘들 것이라고 여긴 은기는 가지 말 것을 부탁하다 두 사람은 크게 다투고야 만다. 그렇게 상처를 안은 채로 밖으로 나온 은기가 사고를 당하자 제이는 우주가 아닌 그의 곁에 머물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이 함께 한 1년이 지난 후, 진짜 제이가 우주에서 돌아와 은기 곁에 존재했던 사람이 복제된 제이임을 알린다. 이로 인하여 은기는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움직이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인다.
꿈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던 제이와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곁에 있어주길 바랐던 은기의 마음이 모두 이해가 돼서 둘의 의견이 엇갈리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여기에 우주비행과 복제로봇이 등장함으로써 SF적 판타지 소재가 결합해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가 진행됐는데, 웹툰보다 조금 더 감성적으로 다가온 부분들이 많아서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면, 샤갈의 미술관 장면이 그랬다.
나의 경우에는 뮤지컬을 먼저 관람하고 웹툰을 봤는데, 반대의 순서로 만나봐도 딱히 상관은 없겠다 싶었다. 대신에 이왕 공연을 볼 거라면, 원작웹툰도 꼭 읽어보기를 바라는 바다.
덧붙여 제이와 은기 외에 복제로봇인 처음과 다시가 무대에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두 배우가 1인 2역을 연기한다고 봐도 무방한데, 그런 의미에서 차이점을 포착하는 게 매우 중요해 보였다. 제이와 처음이를 특히 주목해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사랑의 의미와 더불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우주여행 못지 않게 흥미로웠던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였다. 공연 시작 전에 흘러나오던 음악을 들으며 울컥함이 밀려왔을 때 이미 예상했지만, 공연 넘버도 취향에 잘 맞아서 좋았다.
[CAST]
제이 : 최연우
은기 : 정휘
이날 만난 캐스트는 연우 제이와 휘은기였는데, 연상연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페어라서 재밌었다. 이과 여자와 문과 남자가 전하는 감정의 차이도 눈여겨 볼만 했음은 물론이다. 그저 보통의 하루를 함께 나누며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은 같았으나 그럴 수 없게 된 이들의 안타까운 헤어짐이 맞닥뜨리게 해준 결말도 강렬했다. 여러모로, 9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무대를 가득 채워준 두 사람의 열연이 정말 멋졌다.
사실, 인간을 쏙 빼닮은 복제 로봇 이야기가 요즘은 흔한 소재라서 그리 놀랍지 않았으나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웹툰은 이성적인 면모가 두드러졌고, 뮤지컬은 앞서 언급한대로 감성적인 특징이 돋보여서 색다르게 느껴졌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박해림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를 첨부하자면 웹툰은 은기를 중심으로, 뮤지컬은 제이를 중심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에서 가장 큰 차이점이 존재했는데, 덕택에 두 작품을 전부 만나고 나니 비로소 퍼즐이 완벽하게 맞춰지는 기분이 들어 만족스러웠다.
잔잔한 멜로디와 반복되는 가사에 공연이 전하고픈 메시지가 담겨 귀를 기울이게 만든 점도 흡족함을 선사했다. 그저 그런 보통의 하루를 나누고 싶다는 가사가 담긴 "이토록 보통의", 끝이라 생각한 순간 다시 마지막이었던 순간 처음으로, 라는 노랫말이 맴돌게 해준 "니스" 넘버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최연우 배우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진취적인 여성으로 표현하며 우주로 향하는 제이의 선택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우주로 탐사를 떠나는데 있어 복제로봇 비용이 큰 역할을 한 건 사실이지만, 또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은기를 찾기 위해 스스로 결정을 내린 이유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 거라고.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에선 복제로봇 비용에 대한 언급이 없다. 웹툰에서만 확인이 가능한 내용이었기에, 관대를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기도 했다.
정휘 배우는 처음이를 선택한 이유로 5년 동안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내놔서 공연장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힘들었던 5년의 시간을 보낸 이후 찾아 온 1년 동안의 행복을 경험하게 해준 대상인 데다가 처음이는 다리도 다쳤고, 혼자라서 안쓰럽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그 뒤에 5년 동안 정말 힘들었음을 어필했기에 은기와 제이의 과거가 문득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서 은기가 포맷이 되어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처음이를 어떻게 그리 잘 받아들였는지 궁금하단 질문에 대답을 잘 해나가다가 갑자기 "뭔가 있다!"라고, 진짜 느낌표까지 딱 찍는 느낌으로 말을 해서 다시금 웃음이 터졌다.
최연우 배우는 질문을 곱씹은 뒤 조곤조곤 상세하게 알찬 답을 내놓는 타입인 반면, 정휘 배우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타입이라 이로 인한 개성도 넘치는 페어였다.
이와 함께, 제이가 결국에는 행복해졌을 거라는 연우 배우의 답이 좋았다. 제이의 이름이 한 번도 불리지 않는 것에 대한 답으로 나온 박해림 작가의 말도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이 이야기 자체가 제이의 기억이라는 점에서, 스스로를 향한 죄책감이 담겼다고 생각한다는 얘기가 마음을 울렸다.
관객과의 대화 이후에 포토타임도 마련되어 있어 오래간만에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그리하여 이날 참여한 출연진 셋의 모습을 한 장에 담았다. 위의 사진은 다정한 박해림 작가와 최연우 배우, 그런 두 사람을 부럽게 바라보는 정휘 배우.
박해림 작가의 답변도 좋은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는데 시간이 꽤 지나서 흐릿해졌다. 따로 기록하기보단 그날 함께 하며 공연의 여운을 즐기는데 집중했기에 잊어버린 내용이 상당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다.
무대 중심으로 왼쪽, 중앙, 오른쪽 좌석을 차례대로 봐주며 포즈를 취해줘서 좋았다. 이 사진은 연우 배우의 벽돌색 양말 찍은 걸 기념하기 위해 남기는 사진이다. 청바지와 신발 사이로 드러나는 발목에 자리잡은 양말색마저 의상과 잘 어울려서 기억해 두고 싶었다. 헤어스타일도 귀여웠던 연우 제이!
무대 위의 은기와 제이는 남방과 블라우스, 면바지와 청바지에 편한 신발로 캐주얼한 차림을 유지했는데 이 또한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를 관통하는 의상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탄했다. 이토록 평범한, 보통의 의상이 전하는 편안함도 괜찮았다.
세 사람 모두 잘 나온 사진도 한 컷! 환하게 웃는 출연진들의 모습이 예뻤다. 특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미소 짓던 제이와 은기의 모습은 말해 뭐할까 싶을 정도였다.
그냥 눈으로 딱 보이는 행복이 느껴져서. 그리고, 정휘 배우 정말 오랜만이라서 반가웠다. 차기작도 예정되어 있는 만큼, 앞으로 더 멋진 활약을 기대해 본다.
서로를 향해 고개를 마주하는 게 아니라 제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가던 은기를 보면서, 이래서 힘들다고 한 건가 싶은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왜냐하면, 휘은기가 손하트를 시도하며 왼쪽 손을 내밀었는데 연우 제이가 고개를 내저으며 거부하는 상황이 먼저 있었기 때문에ㅋㅋㅋㅋㅋㅋㅋ
제이의 카리스마에 당황하면서도 끌림을 멈출 수 없는 은기가 보였다고나 할까? 털털한 누나 덕택에 마음에 쌓인 게 많았었을 수도 있겠다. 공연 볼 땐 몰랐는데 포토타임 보니까 조금 알 것 같았다.
처음엔 그랬는데 포토타임이 진행될수록 연우 제이도 휘은기 쪽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은기 마음 아니까 제이가 장난을 좀 친 거겠지.
연우 제이 웃는 얼굴 진짜 최고다. 휘은기도 화사했다. 둘의 감정이 켜켜이 쌓여 완성됐던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역시 그래서 더 와닿았다.
이 사진은 무대 전체를 남기고 싶어서 관대 진행을 맡은 랑댚이 포토타임 후 마무리를 할 동안 찍어 보았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니까 왜 찍는지 모르겠지만, 이라고 하면서도 브이 포즈를 취하며 웃던 랑댚이었다. 그 순간을 사진에 못 담은 게 조금 아쉽지만 할 수 없지. 그래도 무대는 잘 담겼다.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랑댚이 질문과 더불어 출연진들의 답변과 필요한 내용 정리를 잘해줘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다. 작품에 대한 이해도 역시나 엄청나서 감탄!
위와 같이,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무대는 작은 상자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 특징인데 이것의 이름은 픽셀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영상과 조명이 어우러짐에 따라 눈을 잡아끄는 장면이 연출됐는데, 객석의 양쪽 벽면까지 활용해 우주를 표현한 순간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우리 모두가 우주 안에 존재하는 기분이 들어서 더더욱.
[CAST]
처음 : 최연우
다시 : 정휘
공연이 끝나고 로비로 나오면, 캐스팅 보드에 쓰여진 캐릭터 이름이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이와 처음, 은기와 다시. 제이와 은기, 처음과 다시. 인간과 복제로봇이 선보인 보통의 하루, 그 안에서 만났던 보통의 사랑 속 보통의 연애가 머리 속에 생각보다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관객과의 대화까지 함께 해 더 알찼던 한때였다. 좋은 공연 잘 봤으니, 나 역시도 별다를 건 없지만 그래서 더 살아볼 만한 보통의 하루를 힘차게 계속 살아봐야겠다 다짐했다. 그러니까 제이, 너도 꼭 행복해져야 해. 아니, 행복해졌을 거라고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