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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헤드윅 :: 짜릿한 전율과 감동의 여운이 마음을 울렸던 공연 (윤소호, 제이민)

초록별 2019. 8. 30. 22:59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다시금 뮤지컬 <헤드윅>의 막이 올랐다. 스타일리쉬 록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내세운 작품으로, 주인공 헤드윅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콘서트를 통해 짜릿한 전율과 감동의 여운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내가 이 공연을 처음 보게 된 건 조드윅으로 유명한 배우 조승우의 헤드윅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사실, 첫 관람 때는 내용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배우의 연기를 보고 노래를 듣는데 몰입하느라 바빴다. 이러한 이유로 뮤지컬 <헤드윅>이 전하는 메시지를 깨닫는데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뮤지컬 <헤드윅>은 동베를린에 살던 한셀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 미국 병사 루터와의 결혼을 위해 성전환 수술을 받고 비좁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엄마의 이름인 헤드윅으로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려야만 했던 다사다난한 삶을 다룬 공연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미국으로 건너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한 것도 잠시, 소일거리로 먹고 살며 록 밴드 디 앵그리인치를 결성해 보컬로 노래를 부르는 일상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16세 소년 토미를 만나게 돼 드디어 영혼의 반쪽을 찾았다고 확신하지만 이로 인하여 헤드윅은 또다른 절망을 맛봐야 했다. 



싸구려 수술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되지 못한 헤드윅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통해 세계를 아우르는 사랑의 의미와 생의 가치를 되새기게 해줌으로써 위로를 전해주었다. 그리하여 화려한 가발과 의상에 메이크업으로 치장한 헤드윅이 모든 걸 다 던져버리고 진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을 때 경험할 수 있었던 감정은, 압도적인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CAST]

헤드윅 : 윤소호

이츠학 : 제이민

THE ANGRY INCH

슈크슈프(GTR 1) : 최기호

크리츠토프(GTR 2) : ZAKKY

야첵(Bass) : 이한주

슐라트코(Drums) : 최기웅

미르코(Keyboard) : 조커(이효석)


올해 개막한 뮤지컬 <헤드윅> 첫 관람은, 캐스팅 소식만으로 놀라움을 자아냈던 윤소호 배우의 헤드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소호 헤드윅, 일명 솧드윅의 출연은 전혀 예상치 못했으므로 의외의 신선함이 더해져 얼른 만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솧드윅 첫공을 다녀왔다.


일단, 관람 전의 심정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대한민국 공연계에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나가고 있는 배우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접했던 작품과는 결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극의 대부분을 헤드윅이 이끌어 나가야만 하는, 1인극은 아니지만 1인극이라고 봐도 손색이 없는 뮤지컬 <헤드윅>의 주인공으로 나서는 거라서 불안감과 동시에 응원하는 마음이 샘솟아 공연 시작 전까지 친구와 둘이서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역시나 배우 걱정은 쓸데없는 것임이 판명되었다. 첫공부터 공연장을 주름잡으며 패기 넘치게 활보하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가 기대될 뿐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게 잘 해내서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1층 오른쪽 객석 출입구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솧드윅을 보는 순간 마주해야 했던 울컥함은 그래서 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물론, 실수가 없었던 건 아니다. 토미와 같이 있었던 장소가 리무진이었는데 호텔이라고 해서 정정해야 했고, 밴드 멤버가 귀띔을 해준 덕택에 깜빡 잊고 넘어갈 뻔했던 순서를 무사히 진행시킨 장면도 존재했다. 특히 공연 초반에는 긴장한 티가 역력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도 풀리고 실수에 대한 대처도 애드립을 통하여 매끄럽게 연결시켜 나가는 게 보여 만족스러웠다. 결론적으로, 라이브 공연의 묘미를 확실하게 드러낸 솧드윅 첫공이었다고나 할까? 


헤드윅이 콘서트를 연 장소가 분노의 질주 공연장이었어서 관객들의 객석 입장 시간에 영화 <분노의 질주> OST가 흘러나오는 점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영화 <분노의 질주 : 홉스&쇼>가 개봉해서 이러한 사실을 솧드윅이 언급하며 영화 안 봤냐고 물어봤는데, 안 봤다......


아무튼, 그래서 뮤지컬 <헤드윅>의 무대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가 구비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를 많이 활용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멋있긴 했다. 오른쪽 자동차 보닛을 오븐이라고 말하며 오븐에 고프로 설치했다고 좋아하던 솧드윅의 천진난만함도 웃음을 빵 터뜨리게 했던 찰나 중 하나였다.


앵그리인치 밴드가 뮤지컬 <레미제라블> OST를 연주하자 왠지 모르게 익숙하다면서 노 젓는 시늉을 하던 솧드윅 역시도 재밌었다. 덧붙여, 토미의 공연을 엿듣기 위해 끊임없이 열고 닫던 문은 분노를 담은 발로 쾅쾅 차버리는 바람에 조만간 부숴질 거라고 확신했다. 첫공부터 심하게 찌그러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Tear Me Down'에 앞서 무대에 올라 망토를 휘날리는 장면은 좀 어색했지만, 솧드윅만의 드라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들려줄 때 확인할 수 있었던 몰입감과 넘버 소화력이 훌륭해서 최고의 하루를 보내는 게 가능했다. 


'The Origin Of Love'를 불러줄 때부터 눈물이 났으니 말 다한 거다. 'Sugar Daddy'에서 객석으로 내려와 이루어진 카워시는 역시나 뻣뻣한 감이 도드라졌지만, 'Wig In A Box'의 절절함과 'Wicked Little Town'이 건넨 위로가 마음에 닿아서 또다시 울컥함이 밀려들고야 말았다. 참고로, 닥터 에스프레소 바에서 부른 커버곡은 'Try to remember'였다. 솧드윅의 목소리는 원래부터 좋아했지만, 새삼 이 배우만의 음색이 귓가에 선명하게 꽂혀 황홀했다. 미성과 중저음을 포함해, 고음도 잘 질러줘서 진짜로 기대 이상이었다. 'The Angry Inch'는 살짝 약했지만, 점차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눈에 보이는 비주얼 자체도 환상적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헤드윅 중에서 솧드윅이 제일 예뻤다. 다리가 길고 늘씬해서 핫팬츠도 잘 어울리는 데다가 어떤 가발이든 완벽하게 소화해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골드 컬러의 반짝임이 돋보이는 롱드레스였다. 이 의상 특징이 다리 한쪽 부분만 트임이 길게 나 있는 거였는데, 그래서 무대 위에 앉을 때 다소곳해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급기야 어떤 관객이 "예뻐요!"라고 외치는 상황이 발생, 솧드윅이 감상평 10초 준다면서 말해 보라고 자비를 베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5초 밖에 말을 못해서 고나리를 당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본인이 예쁘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헤드윅이었다.   



윤소호 배우가 연기하는 헤드윅과 더불어 토미에게도 압도당했던 공연이었다. 지금까지 토미의 이야기를 제대로 받아들였던 적이 없었는데, 이날만은 달랐다. 여기에 더해 가발과 옷을 스스로에게서 떼어내고 가슴에 자리잡았던 토마토를 움켜쥐고 내리칠 때, 공연장에 진동하던 토마토 냄새마저도 헤드윅의 공연장 무대를 멍하니 바라보게 됐다.


문득 떠올려 보건대, 이날 가장 좋았던 넘버는 'Midnight Radio'였다. "넌 외로운 세상 지친 영혼", "지지마라", "포기마라"라는 가사에 울지 않을 수 없는 거였다. 헤드윅 자신을 향한 노랫말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를 위한 곡이었을 테니.


그래서였을 거다. '미드나잇 라디오'의 말미에 반복되는 "손을 들어"라는 가사에 냉큼 손이 올라갔던 이유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손이 움직였다. 마음이 가는대로, 노래 가사에 맞춰 우리 모두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앵그리인치 밴드의 연주와 코러스, 감칠맛 나는 연기 또한 조명의 화려함 속에서 더욱 더 빛이 났다. 넘버의 강렬한 사운드와 새롭게 변화된 스크린 속 이미지들과의 만남도 즐거웠다. 


헤드윅과 토미를 각기 다른 빛깔의 조명으로 구분하며 표현하는 장면도 눈부셨다. 가장 감명깊었던 조명의 쓰임이었다. 


연기도, 노래도 출중함을 자랑한 제이민 배우의 이츠학도 최고였다. 비중이 많다고 보긴 힘들지만 솔로 넘버에서 확연히 표출되던 어마어마한 가창력은 압권이었음을 밝힌다. 객석으로 열심히 물을 입으로 뿌려대던 솧뒥에게서 관객들을 지켜내기 위해 휴지를 전달해 주던 착한 사람. 


결론적으로 앵그리인치 밴드와 제츠학, 솧드윅까지 전부 사랑이었던 뮤지컬 <헤드윅>이었다. 



예전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비로소 알아차려 받아들이는 순간들이 많아 뜻깊었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전부 다 흡수한 것은 아니니 몇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포토존 뒷면에 빼곡하게 존재감을 선보이는 맥도날드도 유난히 가슴을 시리게 했기에.


솧드윅 첫공이라 관객도, 배우도 내외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없지 않아서 이 또한 재밌었는데 다음에 또 보러 가면 이런 공기는 확인이 불가능할 듯 해서 이날 가기를 잘했다 싶었다. 이제부터 바라는 게 있다면 한 가지, 몸만 잘 써주면 참 좋겠다.  


아무래도 솧드윅의 신인 시절부터 공연을 봐왔던 만큼, 계속되는 성장에 뿌듯함을 느끼는 요즘이다. 친구 말마따나 가슴으로 낳고 통장으로 키운 배우 중 한명이라 더더욱 그랬다. 앵콜 끝내면서 좋은 소식 알려준다고, 지금 나가도 대낮이니 맛있는 거 많이 먹으라던 마지막 인사도 뭉클함을 전했다. 


지금까지 봐온 윤소호 배우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솧드윅은 인생캐로 남을 듯 하다. 윤소호 배우가 탄생시킨 헤드윅은 어리지만 드라마가 꽉 차 있어서 좋았다. 이와 함께, 작품과 캐릭터에 가장 푹 빠져들었던 뮤지컬 <헤드윅>과의 한때였음을 인정한다. 해가 지날수록 나이를 먹어가면서, 같은 공연을 재관람함에 따라 느끼게 되는 감정의 깊이가 한층 더 농밀해져 공감대가 형성되는 일이 남달라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