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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테레즈 라캥 :: 음울한 집에 스며든 욕망과 파멸의 공기

초록별 2019. 7. 20. 17:54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에밀 졸라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공연이다.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닌 사람들의 이야기가 농밀한 문장들로 가득찬 책을 먼저 읽고 뮤지컬을 관람했는데, 이로 인하여 장르와 포커스에 따른 차이점이 눈에 띄어 흥미로웠다. 



욕망과 파멸의 공기가 축축하게 스며든 음울한 집이었다. 테레즈, 로랑, 카미유, 라캥 부인, 네 사람이 뿜어내는 이질적인 분위기와 각자의 욕망이 얽히고 설켜 완성된 비극의 냄새가 시작부터 코를 찌르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하여, 라캥 부인의 집에 갇혀 버린 사람들의 추락을 지켜보는 일이 관객의 몫으로 남겨졌다. 한 마디로,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집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욕망에 사로잡혀 갈 곳을 잃어버린 영혼들의 선택이 빚어낸 결말을 맞닥뜨리게 해줌으로써 그에 따른 메시지를 확인하게 돕는 작품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인생 전부를 억압당한 채 살아왔던 테레즈가 카미유의 소꿉친구인 로랑을 통해 육체적 쾌락이 충족되는 경험을 마주함에 따라 병약한 남편과 둘을 아꼈던 시어머니마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다. 애정없는 사촌과의 결혼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고모의 정서적 학대가 계속됐다는 점에서 동정심을 유발하는 인물들은 아니었으나 살인은 용서받지 못할 죄이므로 모두가 같은 길을 향하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되돌릴 수 없는 파멸로. 


인물들의 내면 묘사가 탁월해 읽는 재미가 상당했던 원작소설에 비해 공연은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정해진 줄거리의 흐름을 보여주기에만 급급했던 관계로, 부족한 서사는 스스로 채워나가며 봐야 하는 게 가장 아쉬웠다. 배우들은 참 잘했지만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은 아니었던지라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짐이 더해졌고, 그래서 조금 졸렸다. 



[CAST]

테레즈 라캥 : 나하나

로랑 : 백형훈

카미유 : 최석진

라캥부인 : 최현선


오로지 4명의 캐릭터에게만 초점을 맞추게 도와 집중력을 높인 점은 훌륭했는데, 소설과 극명한 차이점을 선보이는 부분이었기에 인상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극을 이끌어가는 타이틀 롤로 모습을 드러낸 하나 테레즈는 조금씩 천천히 잃어가던 생기를 되찾은 시간도 잠시, 가속도를 내며 빠르게 시들어가는 인물의 처절한 생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형훈 로랑은 카미유가 가지지 못한 활기와 뜨거운 열망을 지님에 따라 테레즈를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오로지 육욕에 취해 이성을 잃고 살인을 저지르고 마는 인물로 테레즈에 이어 라캥부인의 집을 손에 넣고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뒤틀린 욕망의 결정체를 만나게 됐음은 물론이다. 처음에는 테레즈가 먼저였을지 몰라도 서서히 집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져 돌변하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다만 다른 캐릭터에 비해 서사가 덜 완성된 느낌이라 개연성이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었다. 


이와 함께 뮤지컬 <테레즈 라캥>은 치정극적인 요소를 음악과 조명이 어우러지는 장면의 오묘함으로 압축해 탄생시킴으로써 만 15세 이상이라는 관람등급에 충실했다. 그럼에도 하나 테레즈와 형훈 로랑이 사랑을 나누던 순간은 꽤나 치명적이면서도 강렬했음을 밝힌다. 서로를 갈구하던 눈빛과 몸짓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두 배우가 강강 노선을 고수해서 치정극의 시간을 지나 공포감을 자아내는 스릴러가 펼쳐질 때의 긴장감 역시도 한껏 고조돼 쉽사리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석진 카미유는 병약함과 더불어 가부장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음으로 인하여 분노를 유발하는 캐릭터를 멋지게 소화해냈다. 뜨거운 애정을 원하던 테레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손등에 키스 뿐이었지만, 테레즈의 이름을 끝도 없이 부르며 소유욕을 표출하는 일만은 게을리하지 않아 아내에게 증오의 감정이 겹겹이 쌓이도록 만드는데 일조했다. 힘 없는 목소리에 깃든 강압적인 태도가 오히려 더 옥죄는 느낌을 건네 이 또한 놀라웠다.


현선 라캥부인은 오로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란, 헌신과 이기심이 합쳐진 감정의 집합체이기 마련인데 라캥부인의 애정은 한 단계 더 나아감으로써 카미유 못지 않게 테레즈를 괴롭히기에 충분했다고 여겨진다. 몸에 상처를 내는 대신에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다반사였을 테니. 그러나 믿었던 이들의 배신으로 인해 집만 남는 상황이 닥쳐왔을 땐 라캥부인 역시도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을 기점으로 이어진 연기 역시도 최고였기에 더더욱. 


덧붙여 테레즈를 부르던 카미유의 어감이 라캥부인을 많이 닮아 있는 점도 지금 생각해 보니 곱씹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캥부인의 집을 벗어나고 싶어했던 간절한 꿈은 이뤄지지 않았고, 육체적 쾌락에만 몰두했던 삶은 허무함을 넘어 비참한 결말을 통해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 속으로 테레즈 라캥을 인도했다. 주변환경으로 인해 나약해졌을 뿐만 아니라 욕망을 숨겨야만 했던 테레즈의 변화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을 밟아 나간 건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의 열연과 더불어 뮤지컬 <테레즈 라캥>에서 좋았던 건 음악이었다. 가사는 생각보다 직설적이라 별로였는데 멜로디가 공연과 잘 맞아 떨어져서 보고 난 이후에도 자꾸 생각이 났다. 작곡에 걸맞는 작사였더라면 입에 착착 감겼을텐데 아쉽다. 적절한 은유가 매우 필요해 보이는 노랫말의 향연이었다. 


이와 함께, 도입부에서 의도한 악기의 불협화음이 극의 모든 걸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져 기대감을 높였던 찰나도 잊을 수 없다. 



커튼콜이 진행되면서 보여지는 장면은 이랬다. 테레즈, 로랑, 카미유, 라캥부인의 곁에 각기 다른 종류의 꽃이 자리잡아 호기심을 자아냈다. 꽃은 캐릭터에 따른 의미가 있을 거라 여겨지는데 꽃을 대하는 인물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극명하게 나뉘어져 한참을 바라보게 됐다.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 한 가지, 공연 속에서 테레즈가 라캥부인이 명령하는 대로 상자 위에 올라가 서 있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했다. 벌을 받는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했지만 그 외에는 도무지 떠오르는 가설이 없어 답답하다. 



뮤지컬 <테레즈 라캥>의 무대는 라캥부인의 집 내부를 그대로 구현해 냈는데, 그중에서 액자 프레임을 활용한 연출이 재밌었다. 집이라는 거대한 틀에 갇힌 네 사람의 삶이 연상됐기 때문에. 게다가 오직 죽음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아 은근히 소름이 끼쳤다. 


대신, 센 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테레즈, 로랑, 카미유에게 불어닥친 극적인 사건을 어떻게 표현해 낼지에 대한 우려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는데 나름대로 소품과 조명을 사용해 감명깊은 연출력을 선보여서 괜찮았다. 



여기에 공포 스릴러의 맛을 좀 더 제대로 살렸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심장의 쫄깃함이 확 살아나도록! 치정보단 공포 스릴러에 초점이 맞춰진 공연으로 보여졌으니 이 부분을 극대화시켜 보는 것도 괜찮을겠다 여겨졌다. 이날은 프리뷰 할인으로 예매해 2층 1열에서 봤는데, 역시나 전체적인 무대를 한눈에 만나는 게 가능해 만족스러웠다. 


결론적으로, 배우와 작곡과 조명의 인상적인 결합이 시선을 사로잡았던 뮤지컬 <테레즈 라캥>이었다. 원작소설이 워낙 유명해서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는 초연인 것이 사실이나 아쉬운 점 못지 않게 좋은 점도 많은 작품이니, 잘 다듬어서 재연을 통해 또 만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더불어, 여배우가 주도적인 역할을 도맡아 이목을 집중시키는 극이 현저히 적은 상황에서 마주할 수 있어 반가운 공연이었음을 인정한다.  







하나 테레즈는 얼굴은 작고 키는 커서 피지컬적인 압도감이 특히나 좋았던 우리의 주인공이었다. 어두운 컬러 계통의 의상이 상복을 겸하는 느낌이 들어서 이 또한 의미심장했다. 소심했던 테레즈가 로랑으로 인해 욕망을 표출하고 뒤이어 광기와 공포 속에서 발광하는 장면들이 한시도 눈을 뗼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나는 내가 구원해."라는 말이 테레즈의 입에서 쏟아져 나올 때 어찌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스스로가 선택한 구원이 빛과 희망이 아니라 어둠과 절망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었던 걸 알지 못했을 테레즈를 바라보는 일이 슬펐다. 액자를 수놓게 될 음침한 그림의 일부분 같았던 테레즈와 로랑의 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미유의 유령이 테레즈와 로랑을 맴돌게 된 이후, 그것을 견디지 못한 두 사람이 함께 비극의 길로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내보이며 후회없이 걸어 들어가는 결말 역시도 잘 어울렸다. 


프리뷰 공연이었지만 4명의 배우가 만나게 해준 연기와 노래는 기대 이상이었고, 덕택에 커튼콜 내내 박수 갈채와 환호성이 이어지는 상황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폐해져 가던 테레즈의 몰골은 커튼콜의 마지막 장면에서 정점을 찍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카미유의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던 테레즈, 그리고 암전.


욕망이 불러 일으킨 파멸의 어두운 그림자가 집을 삼켜 버렸으니, 진정한 구원을 위한 답은 하나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