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의 하루/드라마의 시간

[드라마] 은주의 방 :: 셀프 인테리어를 통해 마주하게 된 새로운 삶의 시작

초록별 2019. 5. 6. 19:24

드라마 <은주의 방>은 노란구미 작가가 연재 중인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탄생된 작품이다.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다 셀프 인테리어에 눈을 뜨게 되면서, 지금까지 만나지 못했던 꿈과 인생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며 성장하는 29세 심은주의 이야기를 다뤘다. 



긴 호흡을 이어나가는 웹툰과 달리 드라마 <은주의 방>은 12부작 안에서 이야기가 완성되어야 했으므로 선별된 에피소드에 따른 적당한 각색이 곁들여졌고, 이로 인한 극적 재미가 더해져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특히, 배우들의 감칠맛 나는 열연이 압권이었다. 자연스러운 생활 연기가 돋보였던 심은주 역의 류혜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19년지기 완벽한 남사친의 대명사로 거듭난 서민석 역의 김재영, 엄청난 사교성의 소유자이자 눈치백단 조언자로 귀여움을 독차지한 연하남 양재현 역의 윤지온, 학창시절 절친에서 앙숙이 되어버린 이후로 여전히 은주를 질투하며 시기하던 류혜진 역의 박지현, 네 사람의 각기 다른 인생과 더불어 그 속에서 만나게 된 선택의 시간이 의미있게 여겨졌다. 


이러한 이유로, 원치 않는 미래를 눈앞에 둔 혜진의 단호한 결정 역시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악역을 자처하는 캐릭터였지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동안 확인할 수 있었던 혜진만의 상처와 아픔이 존재했기에 마냥 밉지만은 않았다. 


올리브 채널을 포함해 주연 배우들의 인지도 자체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가 명확한 데다가 앞서 언급한 의외의 캐스팅이 시너지를 발휘함에 따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되었다는 점에서 <은주의 방>이 전하는 가치 또한 되새겨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정말 재밌게 잘 봤다. 



셀프 인테리어가 소재인 만큼, 은주의 집으로부터 비롯돼 다른 이들의 공간이 변화되는 과정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만족감 또한 상당했다. 여기에 청소와 더불어 버림의 미학까지 실천함으로써 집에 활기를 불어넣게 된 은주가 방치해 두었던 자기 자신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 다시 중심을 잡고 힘차게 전진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근데 글램핑 여행을 떠나서까지 인테리어하는 걸 보고 있자니 뭐랄까, 일종의 직업병처럼 느껴져서 웃음이 빵 터졌다. 훨씬 예쁜 공간으로 탈바꿈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지는 장면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편집 디자이너로 밤낮 구분없이 일하며 힘겹게 살아오던 은주가 그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 할수록 행복해지는 진짜 꿈을 찾게 된 순간에 반짝반짝 빛났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심은주는 꿈과 함께 사랑의 행복까지 거머쥐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또다시 언급되는 은주의 인생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우리의 민석군.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방황하던 감정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게 됐을 때의 짜릿함은, 은주와 민석의 환상적인 케미로 인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했다. 


웹툰에선 둘의 우정이 오랜 시간 작품을 이끌어 갔지만 드라마는 달랐다. 훨씬 더 달달하고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곳곳에 자리잡음으로 인해 몽글몽글한 기분을 한껏 만끽하게 해줘 즐거웠다. 



뿐만 아니라 은주가 셀프 인테리어의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준 멘토라는 점에서도 확고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민석이었다. 대형 건설회사 인테리어 팀을 나와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엔트란스를 차렸고, 이곳의 디자인 팀장으로 활약함으로써 은주에게 다양한 인테리어 조언과 팁을 전해준 장본인이기도 했으므로.


이 둘의 환상적인 조합은 드라마 OST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드라마 <은주의 방> OST 스페셜 트랙으로 은주와 민석이 함께 부른 "At home"이 흘러나오는 순간, 절로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류혜영의 맑은 음색이 통통 튀는 발랄함을 전했고, 김재영의 중저음과 노래 실력은 수준급이었기에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였다. 연기도, 노래도 최고였다! 



"넌 나중에 뭐할거야?"

- 재밌는거.

"재밌는 거?"

- 행복해지는 거.


명대사도 많았는데, 드라마 <은주의 방> 6회에서 민석의 질문에 은주가 답한 내용이 꽤나 와닿았다. 내가 재밌고 행복해지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던 은주의 얼굴을 가득 채운 함박웃음은,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외에 은주의 엄마가 딸에게 니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면 뭐든 억지로 하지 말라며, 하고 싶은 거 하라는 말에 내가 더 울컥해졌던 순간도 있었다. 참고로, 이 장면에서 오간 대화의 핵심은 결혼이었다. 결혼 얘기에서 넘어가 인테리어가 재밌냐는 물음에 진짜 재밌다고, 하면 행복하다니까 그럼 됐다던 엄마의 말 또한 마찬가지로 마음을 울렸다. 


나랑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다던, 민석의 회사 대표의 마인드도 멋졌다. 



원작 웹툰이 현재 연재를 진행 중인 만큼, 드라마 <은주의 방> 시즌 2도 기대해 보고 싶다. 하지만, 무조건 시즌1 배우들이 전부 와야만 한다. 


그리고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의 인연이 이어져 까메오로 출연한 배우 남지현, 도경수, 이민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장면도 금상첨화였다. 



드라마도 재밌었고, 에필로그로 만나게 됐던 인테리어 꿀팁 시간도 알찼다. 류혜영의 지휘 아래 인테리어 유튜버는 물론이고 작품에 함께 출연한 민석, 재현, 승준이 등장해 직접 소품을 만드는 모습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인테리어 꿀팁은 덧창이었다. 하지만 사실, 어느 것 하나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셀프 인테리어 역시도 그랬다.





"집이다."


하루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은주가 집으로 돌아와 외친 이 한 마디는 드라마 <은주의 방> 마지막회를 마무리하는데 있어 최고의 명대사였음을 확신한다. 지친 일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만의 공간이 건네는 포근한 위로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의 집을 돌볼 의무가 있다. 


셀프 인테리어에도 관심이 생기긴 했으나 쉽사리 도전해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롯이 나 자신만의 공간으로 이루어진 집을 좀 더 아끼고 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만큼, 드라마 <은주의 방>과의 만남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