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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시데레우스 :: 진실을 찾아 나선 두 사람 사이에서 빛나던 별을 만나다

초록별 2019. 5. 1. 17:43

뮤지컬 <시데레우스>는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특유의 원형 무대를 잘 살린 공연이었다. 케플러가 갈릴레오에게 편지를 보냄에 따라 본격적으로 펼쳐진 이야기는, 두 학자가 지동설을 향한 진실로 나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위기와 갈등을 중심으로 절정을 맞이했다.



공연은 기본적으로 케플러와 갈릴레오의 연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므로, 과학적 이론을 무대에서 풀어내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상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졌고, 때때로 눈이 감겨오는 걸 피할 길이 없었다. 


여기에 갈릴레오의 딸이자 수녀인 마리아가 교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인물로 등장해 지동설을 주장함에 따라 이단으로 몰린 아버지와 종교 사이의 대립을 확인시켜 주며 극의 흐름을 이끌어 나갔는데, 이 점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뮤지컬 <시데레우스>를 보는 내내 가장 인상깊었던 건 무대였다. 케플러와 갈릴레오의 과학적 상상이 현실로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영상 스크린을 통해 우주의 풍경으로 보여주며 감탄하게 만들었던 순간은 정말 최고였다.


다만, 무대 구현에만 힘을 쏟은 듯한 분위기가 형성돼 이 점은 아쉬웠다.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흥미를 유발하는 장면이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나 그것도 잠시 뿐, 공연에 몰입감을 더해주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재미가 없었다. 사실적 내용에 상상력을 덧입힐 때 양념을 곁들이는 것을 잊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올해 들어 유독 갈릴레오와 관련된 공연 여러 편이 무대에 올라 관객들을 만나는 중인데, 마음을 확 잡아끄는 매력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 



[CAST]

갈릴레오 : 박민성

케플러 : 신성민

마리아 : 김보정


그 와중에 배우들이 열연해 준 건 다행스럽지만, 이로 인해 씁쓸함이 휘몰아쳤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 또한 힘들겠다. 


박민성 배우의 갈릴레오는 진실을 향한 굳은 믿음과 더불어 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해준 캐릭터로,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신비로운 우주의 비밀을 파헤칠 땐 진중함을 바탕으로 강렬함, 메디치 가에게 후원을 받고자 몸을 사리지 않는 열정의 움직임은 코믹함을 선사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연기와 노래의 환상적인 조화가 공연장 지붕을 뚫을 것 같았던 찰나가 별보다 더 눈부셨다.


신성민 배우의 케플러는 젊은이다운 패기가 돋보이는 수학자의 면모가 도드라졌다. 갈릴레오를 지동설로 이끈 장본인이자 그를 구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력자의 모습이 끈끈한 케미를 전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뮤지컬 배우 신성민의 모습을 오래간만에 보는 거라 정말 반가웠다. 이날 공연을 본 것 역시 노래하는 성민 케플러를 보기 위함이었는데 후회없는 결정이었다.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듀엣곡에서 어우러지던 화음도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김보정 매우의 마리아는 아버지와 종교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겪으면서도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들이 감명깊게 다가왔다. 연기와 더불어 똑부러지는 딕션은 완벽했는데 다만, 넘버를 소화할 때마다 불안함이 전해져 와 이 점은 단점으로 남았다. 노래적인 부분은 조금 더 보완이 됐으면 좋겠다. 헬멧에선 볼 때 진짜 좋았는데, 뮤지컬에선 처음 만나서 그런지 살짝 아쉬움이 감돌았다.  



예상보다 훨씬 더 설명적인 이야기 속에서 음악이라도 귀에 잘 들어왔어야 했을텐데, 애석하게도 넘버 자체에도 임팩트가 딱히 없는 느낌이라 공연을 다 보고 나니 겨우 남는 건 배우들과 무대가 전부였다. 선공개된 케플러의 넘버 '살아나'가 그나마 귀에 들어오긴 했지만 공연장을 나와서도 생각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결말에 다다랐을 땐 울컥함이 마음을 뒤흔든 탓에 조금 놀랐다. 의외이긴 했으나 진실을 찾아 나선 두 사람 사이에서 빛나던 별을 만날 수 있었기에 그랬던 것이 아닐까 싶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종교적 탄압이 학자들의 연구에 가장 큰 장벽이었음을 알게 되니 이 점 역시도 슬픔을 안겨주기에 충분했고 말이다. 


진실을 토대로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쳐 힘껏 비상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였던 뮤지컬 <시데레우스>였다. 덧붙여, 이과적 낭만 혹은 감성을 이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여실히 깨닫게 해준 시간이기도 했음을 밝힌다.


그 와중에도 갈릴레오, 케플러, 마리아 세 사람이 무대 바닥에 누워서 망원경으로 별을 바라보는 장면이 무대 뒤의 스크린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결론적으로, 공연의 엔딩과 커튼콜의 여운이 상당해서 마냥 아쉬운 극으로만 기억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