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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풍월주 :: 사랑에 깃든 슬픔의 정서를 말하다

초록별 2019. 2. 18. 14:24

뮤지컬 <풍월주>는 사랑에 깃든 슬픔의 정서를 말하는 작품이었다. 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는 방향적 뒤틀림은 물론이고,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음에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함으로써 마주하게 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질 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처절한 애달픔의 극치였다. 



이날은 뮤지컬 <풍월주> 세 번째 관람이자 자셋자막의 길을 알린 하루였다. 율열과 섭열에 이어 임열, 그리고 종환 운장까지 만나게 됨으로써 전캐스트 관람이 이루어졌기에 후회없이 이 공연을 보내주는 게 가능했다.


두 번째 관람까지 2층에서 봐오다가 1층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리는 13열이었던지라 거리감이 상당해서 오츠카를 가져갔고, 이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열연 속에서 배우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선과 더불어 눈물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집중해 바라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열과 사담이 자신들의 이름을 붓글씨로 써내려기 전, 화선지에 쓰여진 밑선을 관찰하는 일이 2층보다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안 보이진 않았다. 요 밑선은 유일하게 섭열일 때만 포착이 안 됐는데 그래서 신기했다. 



[CAST]

열 : 임준혁

사담 : 손유동

진성여왕 : 문진아

운장 : 원종환

궁곰 : 신창주

진부인 : 김연진

여부인 : 김혜미


임열은 풋풋함이 전해져 옴으로써 이제 막 운루 에이스로 승격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풍월이었다. 이로 인한 당당함이 인상적이었으나 아직은 허술한 부분이 많아 계속해서 스스로를 갈고 닦아 나가는 일이 필요해 보였다.


밤남에서의 춤은 모든 동작을 전부 소화해냄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어색함과 삐그덕거림이 체조를 연상시키는 순간이 다반사였는데, 그래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뻐 보여서 진성여왕의 눈에 들었을 거라는 정당성을 부여하게 만들어 재밌었다. 넘버를 부르며 안무까지 함께 해야 함으로 인해 조금 힘겨워 보일 때가 없지 않았고 마지막 단어의 "밤~"에 살짝 위기가 왔지만 무사히 넘어가게 돼 다행스러웠다. 근데 음색은 또 좋아서 귀를 저절로 기울이게 됐다. 


담이를 진짜 좋아하는 열이라서 그게 참 좋았다. 운장에게 90도에 가까운 인사를 하는 담이를 일으켜 세워 어깨를 쭉 펴게 만드는 장면이 미소를 짓게 했는데, 유동담과의 친구 케미 또한 완벽에 가까워서 둘의 투샷 또한 감명깊지 않을 수 없었다.


담이와 부르는 너에게 가는 길의 가사가 조금 어긋났지만 나쁘진 않았다. 절벽 아래를 끊임없이 바라보며 담이를 찾던 열이가 힘없이 계단을 내려오며 담이가 지은 옷을 입는데, 정신이 없어서 옷을 거꾸오 입는 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임열이 가장 좋았던 부분은 초혼에서 터져버린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마주했을 때다. 아이처럼 서럽게 우는 모습에 결국은 나도 울어버리고 말았다. 세 번째 관람이라서 솔직히 안 울거라고 믿었는데, 예상이 여지없이 깨져버려서 깜짝 놀랐다. 바닥에 머리까지 댄 채로 엉엉 우는데 마음이 많이 아렸다. 담이를 향한 진심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통해 폭발하는 것 같은 열이었다. 


그렇게 울면서 불러내던 술에 취한 꿈은 무반주라 슬픔의 극대화를 불러 일으키며 잠시나마 숨을 멈추게 만들었다. 여기에 "담아, 미안해."라는 중얼거림이 터져 나오는 걸 바라보는데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갑작스러운 캐스팅 변경 이후에 이뤄진 공연이라서 몸 상태가 괜찮을까 걱정이 됐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에너지를 더 쏟아내며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게 돼 안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진성이 충격적인 소식을 알려주는데도 무표정으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장면도 최고였다. 열이에게는 오로지 담이가 전부였음을 확실하게 알게 됐던 순간이었으니까. 


유동담은 운루에서 살아오는 동안 삶에 찌든 고단함이 얼굴에서 드러나 애처로웠다. 열이만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이런 생활을 청산하고 어디로든 유람을 떠나 자유롭게 살았을 것 같아서. 하지만 열이가 없다면 의미가 없기에 모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움 그 자체였다.


절벽에서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린 채로 그렇게 열이를 향해 움직이던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한 일이었기에 오래 망설이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하게 돼 더더욱 그랬다. 지난 번에 봤을 때는 이러한 디테일이 없었어서 그 사이에 달라진 유동담만의 포인트를 만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진아 진성은 여전히 잔혹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위엄을 자랑함으로써 눈길을 사로잡았다. 원하는 사랑을 죽음으로라도 얻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 이의 일그러진 얼굴이 몸 곳곳에 자리잡은 화상 자국보다 더 흉측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악독하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너의 이유를 부르면서 발을 닦아줄 때 진성은 열만 보는데, 열이는 발에만 집중하고 쳐다도 안 보는 게 그래서 더 안쓰러웠다. 열이에게 업혀서 어깨를 손으로 조심스레 쓸어보다 가만히 고개를 묻던 진아 진성의 옆모습이 안타까워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담이를 만나고자 열이를 위해 지은 옷을 바닥에 질질 끌며 등장했을 때의 공포감도 상당했다. 담이가 지은 하얀 옷과 진성이 준비한 검은 옷의 대비 역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추측돼 이미 알고 있음에도 앞으로 맞닥뜨릴 결말이 두려워졌다. 


죽널안에서 열을 품에 꼭 안으며 울며 웃는 순간의 절규는 진아 진성만의 디테일이 제대로 표출되는 찰나로, 왕의 자리에서도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분노를 맞닥뜨리게 해줘 감탄을 자아냈다. 


종환 운장은 진성여왕에 대한 사랑도 깊지만 운루에 몸 담고 있는 아이들을 위한 마음도 그에 못지 않은 따뜻함이 돋보여 눈에 쏙 들어왔다. 진성에게로 향하는 눈빛에선 깊은 애정을, 담이에게는 연민의 감정을 담아 애잔한 표정을 지어 보일 때 울컥함을 선사했다. 



바로 어제, 2019년 2월 17일 일요일 공연을 끝으로 뮤지컬 <풍월주>가 막을 내렸다. 모든 배우들의 열연과 무대의 장치적 의미와 넘버의 아름다움이 단 한 번의 관람으로 그치게 만들지는 않았던 작품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쉽게 티켓 예매로 손길이 향했던 공연은 아니었기에 반드시 스토리적 보완을 한 뒤에 오연으로 돌아와줬으면 좋겠다. 



그중에서도 열이와 담이의 관계에 개연성을 더하는 서사는 필수다. 다시 온다면, 또 보게 될 것 같긴 한데 사연 그대로라면 고민을 해봐야 할 듯 하다. 꾸준히 뮤지컬 <풍월주>에 참여했음에도 여태껏 만나지 못했던 율열을 보게 돼 즐거웠고, 캐스팅될 때마다 잊지 않고 챙겨봤던 섭열도 다시 볼 수 있어 최고였다. 의외로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건 진아 진성이라서 섭열, 율열과 함께 진아 진성도 같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 없지 않다. 덧붙여, 사연 캐스트 그대로 온다 해도 환영이다. 


이 리뷰를 통해 뮤지컬 <풍월주> 사연과 함께 했던 지난 날의 시간을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한다. 안녕, 풍월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