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 사랑해도 괜찮아 (전성우, 박지연, 양승리)
볼 때마다 따뜻함을 안겨주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사람들을 돕는 헬퍼봇으로의 삶을 마무리하고 남은 시간을 각자 보내던 로봇들이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감동을 전했다.
주인들과 함께였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또다른 생의 희로애락이 계속되는 나날들 속에서 프로그램 되어있지 않는 감정을 깨닫고 사랑을 예감하며, 이로 인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 올리버와 클레어의 이야기가 애틋함을 건네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CAST]
올리버 : 전성우
클레어 : 박지연
제임스 : 양승리
일단 프리뷰 관람을 시작으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모두 마주함으로써 전캐스트를 완성했다. 그리고 요즘은 어햎 재연 관람을 통해 최애가 된 지연 클레어를 기준으로 올리버 4명을 차례대로 만나는 중인데, 지난 번에 봤던 성우 올리버와 지연 클레어의 케미가 좋았어서 한 번 더 보게 됐다. 무대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그림을 선보이는 두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와 노래의 콜라보레이션이 한층 더 깊어져 이날 역시도 행복한 기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냉방이 풀가동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겹쳐 입은 재킷의 등 부분마저 땀으로 날개를 그리던 성우 올리버를 보고 있자니 괜찮은가 싶었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어 다행이었다. 창문을 열고 손가락을 살랑거리며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로 바람의 온기를 느끼던 봄을 지나 눈이 잔뜩 쌓인 겨울, 차창 밖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추위에 두 팔로 몸을 감싸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 때의 올리버가 귀여웠다. "충전기 왈츠"에서 노크 소리에 놀라서 꽥꽥거리던 모습에도 절로 웃음이 났다. 딸꾹질하는 로봇 같았다고나 할까?
어햎 넘버 중에서 들을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 넘버인 "끝까지 끝은 아니야"가 지연 클레어의 목소리로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순간을 좋아한다. 청아한 음색이 귀를 사로잡고, 장난스러움이 묻어나는 개그감이 웃음을 터뜨리고, 눈꺼풀을 쉴새 없이 깜빡이는 디테일이 로봇다움을 한층 더 끌어낼 때면 시선을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올리버와 제임스의 관계에 대한 깨달음으로 클레어가 기쁨의 눈물과 환한 웃음을 동시에 지어보였을 때, 수많은 반딧불 사이로 반딧불병에 집중한 클레어에게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던 올리버의 모습도 기억에 남았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자신의 방이 아니라 클레어의 뒤를 따라가다 당황하며 겨우 방향을 바꾸던 올리버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사랑을 확인하고 둘의 첫 키스씬이 이뤄지는 찰나의 조명과 쏟아지는 빛 속에 자리잡은 올리버와 클레어는 눈부심 그 자체였다. 쭈그려 앉아 냉장고 문틈 사이로 삐져나온 치마자락을 바라보다 손으로 팔랑거리며 클레어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올리버도, 화분을 향해 둘의 사이를 조심스레 고백하던 클레어의 속삭임도 사랑스러웠다.
클레어에게 충전기 고장났을 때 응급처치법이 쓰여진 쪽지를 주면서 손만 바라보던 올리버의 아픈 눈빛, 반딧불병을 열어 반딧불을 날려보내면서도 고개 숙인 채로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클레어의 모습도 여전히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설렘과 두려움이 반복되는 사랑으로 인해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사랑을 후회하지 않을 둘임을 확신하기에, 괜찮을 것을 안다. 그러니까 잊지 않아도 돼. 사랑해도 괜찮아.
승리 제임스의 다채로운 손놀림을 통해 와닿던 피아노의 진한 울림이 돋보이는 연주도 만족스러웠고, 열쇠와 더불어 올리버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기 위해 얼굴에서 게임기를 떼어내며 표정의 변화를 보여준 숙박업소 직원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올리버와 클레어 못지 않게 올리버와 제임스의 케미도 완벽했다. 특히, 성우 올리버와 승리 제임스의 화음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날따라 눈이 침침한 지연 클레어의 명연기에 두 손을 다소곳이 무릎에 모은 채로 그녀를 따라 잡지를 열심히 읽던 성우 올리버의 디테일도 깨알 재미를 선물했다.
도움이 필요한 클레어를 위한 퍼펙트 헬퍼봇, 올리버였다. 하하!
둘 다 귀여워! 공연에서 그렇게 울려놓고 커튼콜에서는 함박웃음 짓게 만들기 있나요? 물론, 당연히 가능합니다. 되고 말고요.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표정과 포즈가 아주 똑같다.
그렇게 신나게 잡지 읽기를 마친 클레어와 올리버였다. 웃는 모습도 어쩜 그리 예쁘고 멋진 지 모를 일! 지연 클레어와 성우 올리버는 진짜로, 이렇게 오래도록 잘 살았을 거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줘서 더 아련해지는 순간들이었다.
에필로그를 연상시키는 엔딩으로 제격이었다.
클레어, 제임스, 올리버. 셋이 무대 위에 모두 자리잡음으로써 완성되는 이 장면 역시도 사랑한다. 사랑을 아는 헬퍼봇 둘의 꽁냥거림과 그들을 지켜주는 주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오던 따뜻한 장면이었다.
이날은 제임스가 따라주는 차를 받아 마시는 올리버의 티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 마주보며 예쁘게 웃던 제임스와 울리버를 직접 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둘이 함께 했던 삶이 눈 앞에 나타난 것만 같아 더 오래도록 하염없이 바라보게 됐다.
좋은 주인과 좋은 헬퍼봇. 인간과 로봇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관계를 확인하게 해주는 올리버와 제임스의 투샷도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올리버와 클레어는 행복했습니다."로 연결되는 장면이 계속됐다. 아웅다웅 티격태격, 미운 정 고운 정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두 헬퍼봇의 다정한 미소와 장난은 사진 속에도 고스란히 남아 잊지 못할 기록으로 카메라에 저장되었다.
꿀 떨어지는 헬퍼봇들의 노후 생활을 잠시나마 만날 수 있었다고나 할까?
클레어의 팔짱을 기다리던 올리버도 깜찍! 반딧불병에 화분을 가져다 대며 바딧불과 친구가 되기를 소망하던 올리버의 모습도 유쾌했다.
퇴장하는 뒷모습까지도 앙증맞았던 지연 클레어와 성우 올리버였다.
"괜찮을까요?"
- 어쩌면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야기와 클레어의 질문과 올리버의 답에 담겨 있었으니, 그들은 정말로 괜찮을 거다. 그리고 이 공연을 맞닥뜨린 관객들 역시 괜찮음을 경험했을 테니, 진정한 해피엔딩에 더 가까워졌을 것이라 믿는다.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괜찮지 않을 때도 없지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괜찮지 않아서 충분할 때도 있는 법이라는 걸 아니까. 두 헬퍼봇의 짧은 말에 담긴 의미도 이와 일맥상통함을 알기에, 그래서 더 오래도록 되새겨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