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의 하루/드라마의 시간

[드라마] 미생 :: 이 시대 최고의 오피스 판타지

초록별 2019. 1. 2. 02:01

드라마 <미생>은 직장인의 애환을 절절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인기리에 종영한 바 있다. 윤태호의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하며 탄탄한 각본을 통한 이야기의 흐름이 캐릭터의 특성까지 잘 살려낸 각색의 좋은 예로, 성공적인 마무리를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부분의 경우, 원작이 존재하는 작품을 다른 장르로 만들어내는데 있어서 그것을 뛰어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에 따라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인데, 드라마 <미생>은 그런 의미에서 시작부터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이 흥행 포인트로 주요했다고 여겨진다. 


웹툰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배우들의 캐스팅 역시도 이 작품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바둑기사의 꿈을 품었던 장그래는 고졸임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인턴으로 입사해 계속되는 시련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직장인의 롤모델로 거듭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장 큰 문제가 존재했으니, 바로 그의 학력을 포함한 스펙이었다. 그리하여 회사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나감으로써 동기들에게 또한 시기와 질투와 외면의 대상으로 자리잡아야만 했다.


오랜 시간동안 공을 들여 스펙을 쌓고 정정당당하게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일을 시작한 동기들에게 있어 장그래는 충분히 낙하산의 대명사로 보이는 것이 당연했기에, 눈엣가시의 존재를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랬기에, 정규직이라는 꿈을 향해 노력하면 할수록 끊임없이 자신의 현재를 돌아봐야만 했던 장그래는 우리 시대의 비정규직을 대표하는 씁쓸한 자화상이자 희망으로 비춰졌다.



이와 함께 드라마 <미생>에서는 장그래의 꿈이었던 바둑을 인생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흥미로움을 자아냈던 것도 사실이다. 쉽지 않은 인생의 길에서 한 걸음을 떼는 것과 바둑에서 한수를 집중해서 두는 것이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작품의 소재이자 상징이 되어 마음 깊숙한 곳을 뜨겁게 울렸던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바둑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현재의 삶을 돌아보며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만들었기에 더 진한 감동이 마음을 파고들었다. 삶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바둑의 철학은 거꾸로, 바둑을 두는 동안 경험하는 것이 가능한 인생의 진한 메시지를 체감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일개 비정규직 인턴이 대단한 성과를 내 빛을 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 드라마 속 영업3팀에 존재했던 김대리와 오과장을 만날 수 있다면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직장상사이자 멘토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인물이 장그래에게는 2명이나 곁을 지켰기에 그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게 가능했다고 본다. 이름하여, 무적의 영업3팀이자 최강의 드림팀이라고나 할까?


미친 듯이 일에 빠져 열중하면서도 자신의 이익에 앞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챙기는 수고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오과장과 장그래의 직속상사로 따뜻하면서도 냉정한 충고로 급속도로 성장하는데 일조한 김대리의 모습은 이제 막 새내기 직장인이 된 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 될 것이고, 그들과 비슷한 위치에 선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닮고 싶은 존재로 각인됐을 거라고 확신한다. 



비정규직 낙하산 인턴으로 미운오리새끼가 되어버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부딪쳐 나가며 자신만의 업무 스타일을 개척해 나가던 장그래에게도 시간이 흐르자 드디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동기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치열한 입사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갈등을 넘어 동료애를 품게 된 한석율, 인턴 사이에서 월등한 실력을 뽐내며 많은 도움을 준 안영이, 애증의 감정 속에서 조금씩 마음을 드러내던 강백기까지, 네 사람은 미생의 사총사로 '동기 사랑 나라 사랑' 이라는 말을 여실히 보여주며 신입사원 시절을 훌쩍 뛰어넘은 직장인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로 다른 부서에서 일하며 겪어야 하는 수많은 돌발 상황 속에서 모두가 끊임없이 능력을 키워나감과 동시에 짬을 내어 근황을 전하고 조금씩이나마 속내를 털어놓으며 친해지던 모습이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서 생활하는데 있어 무엇보다도 큰 힘을 주는 존재가 바로 동기이기에, 그들만의 진한 우정이 마음 깊이 와닿았던 시간이었음은 물론이다.



완성도 높은 원작의 매력적인 재탄생으로 말미암아 드라마 <미생>은 이 시대 최고의 오피스 판타지로 거듭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직장인들의 녹록치 않은 현실에 비해 장그래의 삶은 생각보다 유연하게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바둑을 접을 수 밖에 없었던 장그래처럼 마음 속에 품었던 꿈을 놓아버린 채로 밥벌이를 위해 직장인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는 공감이 가능하나 일개 신입사원의 아이템이 선정되어 능력을 떨쳐낼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을 통해 실감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극적인 상황이 필요했을 것이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위한 판타지 또한 가미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한회 한회마다 뭉클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직장인의 굴레를 안고 계속해서 인생을 버텨나가야 하는 이들의 소망을 이루어 나가던 장그래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대리만족이라고 할지라도.



더불어, 캐릭터별로 나뉘어진 포스터에도 계속해서 눈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미생에서 완생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대 직장인의 모습을 밑그림으로부터 채색의 단계로 표현해낸 것이 감탄스러워서 한참동안 바라보게 되었으므로. 펜을 쥔 자신의 손으로 직접 그려낸 자화상을 통해 스스로의 완성된 모습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그 만족스러움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실에는 존재하기 힘든 회사생활의 단면을 보여준 것은 맞지만, 완벽히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라서 드라마 <미생>은 판타지이면서 현실이기도 하다는 점이 주요한 인기 요인이었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이 시대 최고의 오피스 판타지 속에 직장인들의 절절한 현실 감성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종영한 지 오래됐음에도 가끔씩 생각이 나곤 한다. 


주옥 같은 명대사는 물론, 장그래로 출연했던 임시완을 포함해 모든 배우들의 저력을 보여주었던 드라마 <미생>이었다. 원작 웹툰 시즌2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드라마를 통해서도 새로운 시즌을 만나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